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요한 6,45)
정유소가 울산에 있는데 주유소는 오직 대구에만 있다면 우리는 차를 몰고 대구를 가야 기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유소를 직접 간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기름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거기에 있는 원유는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상태의 기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유소 사장과 친분이 있고 어떻게든 정유된 기름을 말통에 담아서 받으려면 받을 수도 있지요.
하느님 아버지와 직접 컨택을 해서 그분의 은총을 얻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드님이야말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분이고 우리가 하느님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에게서 배운 이는 누구나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이는 누구나 하느님을 알게 되지요. 두 분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하느님과 예수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그러한 분들이 서로 분리되기라도 한 듯이 서술하곤 하지요. 기업인 예수, 가난한 예수, 리더 예수, 슬픈 예수, 기쁜 예수... 우리가 분리해 내는 만큼 그 완전성에서 동떨어지는 예수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유소에는 기름을 받으러 가지 주유하는 기계를 찬양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지 예수님의 모든 인간적 면모를 낱낱이 분석하려는 게 아니지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나면 달을 바라보아야 옳은 것입니다.
정유소가 울산에 있는데 주유소는 오직 대구에만 있다면 우리는 차를 몰고 대구를 가야 기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유소를 직접 간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기름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거기에 있는 원유는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상태의 기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유소 사장과 친분이 있고 어떻게든 정유된 기름을 말통에 담아서 받으려면 받을 수도 있지요.
하느님 아버지와 직접 컨택을 해서 그분의 은총을 얻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드님이야말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분이고 우리가 하느님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에게서 배운 이는 누구나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이는 누구나 하느님을 알게 되지요. 두 분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하느님과 예수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그러한 분들이 서로 분리되기라도 한 듯이 서술하곤 하지요. 기업인 예수, 가난한 예수, 리더 예수, 슬픈 예수, 기쁜 예수... 우리가 분리해 내는 만큼 그 완전성에서 동떨어지는 예수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유소에는 기름을 받으러 가지 주유하는 기계를 찬양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지 예수님의 모든 인간적 면모를 낱낱이 분석하려는 게 아니지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나면 달을 바라보아야 옳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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