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시고 추한 꼴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에 그가 자신이 드러내는 그 추한 꼴을 사랑해서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게 아닙니다. 그는 다만 술을 마실 때의 그 몽롱한 기분이 좋아서, 또는 그 순간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아서 그렇게 마실 뿐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위들은 우리가 좋고 맘에 들어서 하는 행위들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가오는 것을 완전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면 막연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오류입니다. 돈을 벌고 나면 그 번 돈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책임이 주어지게 됩니다. 단순히 돈을 창고에 재어놓고 펑펑 쓰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 밖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우리 눈 앞에 좋아 보이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지니고 살아갈 때에 그에 합당한 책임감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뒤에 다가올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지혜라는 것은 ‘영원’ 안에서의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오직 완전한 지혜는 하느님만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 각자에게도 선사되는 것이지요.
어린 아이는 자신의 짧은 지혜 안에서 사물을 분별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어린아이의 지혜가 어른의 지혜를 압도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속화된 어른은 하느님을 아는 어린아이보다 더 못한 지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싸우고 다투어 쟁취하지만 하느님을 아는 어린아이는 ‘나눔’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탐욕스런 어른보다는 자신이 가진 사탕 하나라도 친구와 나누어 먹는 아이가 하느님 앞에 훨씬 더 지혜로운 법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위들은 우리가 좋고 맘에 들어서 하는 행위들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가오는 것을 완전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면 막연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오류입니다. 돈을 벌고 나면 그 번 돈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책임이 주어지게 됩니다. 단순히 돈을 창고에 재어놓고 펑펑 쓰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 밖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우리 눈 앞에 좋아 보이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지니고 살아갈 때에 그에 합당한 책임감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뒤에 다가올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지혜라는 것은 ‘영원’ 안에서의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오직 완전한 지혜는 하느님만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 각자에게도 선사되는 것이지요.
어린 아이는 자신의 짧은 지혜 안에서 사물을 분별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어린아이의 지혜가 어른의 지혜를 압도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속화된 어른은 하느님을 아는 어린아이보다 더 못한 지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싸우고 다투어 쟁취하지만 하느님을 아는 어린아이는 ‘나눔’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탐욕스런 어른보다는 자신이 가진 사탕 하나라도 친구와 나누어 먹는 아이가 하느님 앞에 훨씬 더 지혜로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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