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구역미사를 마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적어도 하나에는 분명히 모두 동의할 겁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엄연한 사실 말이지요.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은 ‘행복’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사탕을 찾는 거나, 청소년이 연애대상을 찾는 거나, 다 큰 어른이 더 큰 집을 찾는 거나 모두 ‘행복’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두 일시적인 행복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행히 사제로 일하면서 수많은 죽음의 자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때가 되면 가야 하지요. 어른이고 아이고 남자고 여자고를 가리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하느님이 정한 시기가 되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더 나은 행복을 찾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참으로 허망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오직 영원하신 분에게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 존재는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인 줄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훗날 크나큰 후회를 하게 되겠지요.
제가 말하는 것은 참으로 시급하고 위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 심각하지요. 예를 들어서 지금 구역미사를 드리는 이 집에 불이 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장 여러분들은 그 불을 끄러 달려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보호하고 이 집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영혼에 불이 나서 타죽어간다고 해도 그것에 반응할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당장 느껴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이 심각성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바람이겠지요.”
“적어도 하나에는 분명히 모두 동의할 겁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엄연한 사실 말이지요.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은 ‘행복’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사탕을 찾는 거나, 청소년이 연애대상을 찾는 거나, 다 큰 어른이 더 큰 집을 찾는 거나 모두 ‘행복’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두 일시적인 행복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행히 사제로 일하면서 수많은 죽음의 자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때가 되면 가야 하지요. 어른이고 아이고 남자고 여자고를 가리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하느님이 정한 시기가 되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더 나은 행복을 찾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참으로 허망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오직 영원하신 분에게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 존재는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인 줄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훗날 크나큰 후회를 하게 되겠지요.
제가 말하는 것은 참으로 시급하고 위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 심각하지요. 예를 들어서 지금 구역미사를 드리는 이 집에 불이 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장 여러분들은 그 불을 끄러 달려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보호하고 이 집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영혼에 불이 나서 타죽어간다고 해도 그것에 반응할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당장 느껴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이 심각성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바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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