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성경의 인물 안에서 여러가지 기현상을 보게 됩니다. 예컨대 ‘환시’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그들이 환시에 따라 그렇게 한 선택을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환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떻게 드러나는 것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확고한 것일까요?
하느님은 인간의 선택을 종잇장처럼 구겨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드러내시지만 인간의 선택의 여지는 언제나 남겨 두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설령 신기한 일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를지 아닐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선택을 ‘감행한’ 사람들입니다. 어렴풋이 눈 앞에 드러나는 여러가지 과제들 중에서 하느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자신이 체험한 모든 것을 ‘헛것을 보았다’고 간주하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강렬한 메세지가 오더라도 자신이 하기 싫으면 그만인 셈이지요. 우리가 성경 안에서 발견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도전 거리에 자신을 내어맡긴 사람들인 셈입니다.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기록에 남을 이유도 없을 테니까요.
사실 그런 일들은 많이 일어났던 것이 분명합니다. 기회는 여러 사람에게 주어졌을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는 선뜻 나서지 못한 채로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고 머무른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한 먼지로 잊혀져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사실 수많은 사랑의 선택이 주어지지요. 교리교사를 할지 말지부터 시작해서 구역장을 할지 말지에 이르는 과정, 성소를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과정, 자신의 삶을 헌신하느냐 마느냐 하는 모든 선택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환시라는 수단은 기현상이지만 그것이 모든 대중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의 선택 안에서 ‘실패’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즉, 평범한 한 사람에게 환시가 주어진다고 그가 그 환시를 따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혀 엉뚱한 것을 ‘환시’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태몽’ 같은 것인데 그러한 것들은 전혀 하느님의 뜻과 상관이 없으면서 그저 그 꿈을 꾼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이 투사되어 있을 뿐입니다. 헌데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이 꿈에 돼지를 보았느니, 호랑이를 보았느니 하는 것이지요. 꿈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무슨 꿈을 꾸든지 마치 자신이 그 안에서 어떤 메세지를 받았다고 착각을 하기도 하지요. 이는 환시는 커녕, 집착과 질병의 수준입니다.
환시를 받는 이들은 이미 그 삶부터가 다릅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 안에서 살아가고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상냥하며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믿고 따르지요. 그런 이들이라야 환시의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선택을 종잇장처럼 구겨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드러내시지만 인간의 선택의 여지는 언제나 남겨 두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설령 신기한 일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를지 아닐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선택을 ‘감행한’ 사람들입니다. 어렴풋이 눈 앞에 드러나는 여러가지 과제들 중에서 하느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자신이 체험한 모든 것을 ‘헛것을 보았다’고 간주하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강렬한 메세지가 오더라도 자신이 하기 싫으면 그만인 셈이지요. 우리가 성경 안에서 발견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도전 거리에 자신을 내어맡긴 사람들인 셈입니다.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기록에 남을 이유도 없을 테니까요.
사실 그런 일들은 많이 일어났던 것이 분명합니다. 기회는 여러 사람에게 주어졌을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는 선뜻 나서지 못한 채로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고 머무른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한 먼지로 잊혀져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사실 수많은 사랑의 선택이 주어지지요. 교리교사를 할지 말지부터 시작해서 구역장을 할지 말지에 이르는 과정, 성소를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과정, 자신의 삶을 헌신하느냐 마느냐 하는 모든 선택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환시라는 수단은 기현상이지만 그것이 모든 대중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의 선택 안에서 ‘실패’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즉, 평범한 한 사람에게 환시가 주어진다고 그가 그 환시를 따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혀 엉뚱한 것을 ‘환시’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태몽’ 같은 것인데 그러한 것들은 전혀 하느님의 뜻과 상관이 없으면서 그저 그 꿈을 꾼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이 투사되어 있을 뿐입니다. 헌데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이 꿈에 돼지를 보았느니, 호랑이를 보았느니 하는 것이지요. 꿈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무슨 꿈을 꾸든지 마치 자신이 그 안에서 어떤 메세지를 받았다고 착각을 하기도 하지요. 이는 환시는 커녕, 집착과 질병의 수준입니다.
환시를 받는 이들은 이미 그 삶부터가 다릅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 안에서 살아가고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상냥하며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믿고 따르지요. 그런 이들이라야 환시의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