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화장품 가게에 우뚝 멈춰 서서 신상이 나왔는지를 살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가게에서 책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의 기호에 멈춰서는 셈이지요. 그리고 그 대상을 사랑하는 셈입니다.
성당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 앞에 멈춰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가지 자신들의 이유로 멈춰섭니다. 성당의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멈춰선 사람, 성당의 분위기 때문에 멈춰선 사람, 인맥 때문에 멈춰선 사람, 취미생활 중 하나로 멈춰선 사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을 찾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멈춰서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 앞에서 멈춰서게 되고 그분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분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누군가가 바로 이 계명 때문에 멈춰서게 된다면 그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지요.
사랑은 무엇일까요?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끌립니다. 동물적인 반응의 끌림이 있지요. 사춘기가 되면 절로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매력’에 반하는 거지요. 상대의 로맨틱함과 아름다움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상대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로맨틱한 상대가 나타나면 당연히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찾는 것이 보물인데 가장 좋은 보물이 눈 앞에 보이면 그것이 탐이 날 수 밖에요. 그래서 이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결국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매력을 사랑한 셈이지요.
참된 사랑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를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가장 중요하게는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그가 때로는 못난 성격을 지니고 있어도, 심지어는 결함을 지니고 있고, 죄를 지니고 있어도 그를 향해서 헌신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사랑은 커녕 미워하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늘 마음 속으로 독을 품고 소리치지요. 저 사람은 이런 저런 오류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를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신앙의 본질을 잊고 있는 셈이지요. 예수님은, 우리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말이지요.
여기서 아주 오래된 성경의 우화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엄청난 금액을 탕진 받아놓고 상대가 빌린 아주 작은 금액에 치를 떠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화해의 계약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실천한 대로 우리 주님에게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는 내가 실천하지 않은 사랑 그대로 나 자신이 당하게 되는 것이 심판의 본질인 셈이지요.
교회 안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고 모두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적인 선택입니다.
성당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 앞에 멈춰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가지 자신들의 이유로 멈춰섭니다. 성당의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멈춰선 사람, 성당의 분위기 때문에 멈춰선 사람, 인맥 때문에 멈춰선 사람, 취미생활 중 하나로 멈춰선 사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을 찾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멈춰서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 앞에서 멈춰서게 되고 그분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분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누군가가 바로 이 계명 때문에 멈춰서게 된다면 그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지요.
사랑은 무엇일까요?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끌립니다. 동물적인 반응의 끌림이 있지요. 사춘기가 되면 절로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매력’에 반하는 거지요. 상대의 로맨틱함과 아름다움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상대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로맨틱한 상대가 나타나면 당연히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찾는 것이 보물인데 가장 좋은 보물이 눈 앞에 보이면 그것이 탐이 날 수 밖에요. 그래서 이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결국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매력을 사랑한 셈이지요.
참된 사랑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를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가장 중요하게는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그가 때로는 못난 성격을 지니고 있어도, 심지어는 결함을 지니고 있고, 죄를 지니고 있어도 그를 향해서 헌신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사랑은 커녕 미워하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늘 마음 속으로 독을 품고 소리치지요. 저 사람은 이런 저런 오류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를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신앙의 본질을 잊고 있는 셈이지요. 예수님은, 우리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말이지요.
여기서 아주 오래된 성경의 우화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엄청난 금액을 탕진 받아놓고 상대가 빌린 아주 작은 금액에 치를 떠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화해의 계약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실천한 대로 우리 주님에게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는 내가 실천하지 않은 사랑 그대로 나 자신이 당하게 되는 것이 심판의 본질인 셈이지요.
교회 안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고 모두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적인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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