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 15,15)
우리가 직장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지 않으면 잘리기 때문이지요. 직장을 잃으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저런 걱정을 근본으로 삼고 아침이 되면 직장에 나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유입니다. 친구는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만납니다. 아니면 내가 가진 슬픔을 토로하기 위해서 만나기도 하지요. 이든 저든 겁이 나서 친구를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친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에 과연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는 저마다의 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만나는 사람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180도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만나는 사람은 정말 만나기 싫은데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구원을 잃지 않으려고 억지로 나아갑니다. 반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은 그 친구를 위해서 더 나은 것을 준비하고 그 친구가 기뻐하기 위해서 가며,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의 상태에 남는 이들이 있고, 친구가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직장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지 않으면 잘리기 때문이지요. 직장을 잃으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저런 걱정을 근본으로 삼고 아침이 되면 직장에 나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유입니다. 친구는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만납니다. 아니면 내가 가진 슬픔을 토로하기 위해서 만나기도 하지요. 이든 저든 겁이 나서 친구를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친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에 과연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는 저마다의 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만나는 사람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180도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만나는 사람은 정말 만나기 싫은데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구원을 잃지 않으려고 억지로 나아갑니다. 반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은 그 친구를 위해서 더 나은 것을 준비하고 그 친구가 기뻐하기 위해서 가며,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의 상태에 남는 이들이 있고, 친구가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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