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우리는 흔히 내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반대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노력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랑’하십니다. 나의 하루의 삶과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상의 축복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느끼지 않습니다. 느낄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더이상 첨가되고 부어지는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있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랑을 쏟은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다시 하느님에게 사랑을 돌려 드리는 것이지요. 하느님 사랑의 완성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한 사람은 비로소 진정한 하느님의 면모를 알게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와 맥락을 달리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악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더 큰 사랑을 부어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지요.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 곧 당신과 같은 영을 지니신 분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분을 우리에게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단 한번의 유일한 제사를 치르신 셈이지요. 가장 고귀한 진리에 대한 세상의 죄악의 반란이었던 셈입니다. 세상의 악에 의해서 하느님의 진리와 선이 죽어 버린 듯 하였으나 하느님은 정반대의 일을 계획하신 것이지요. 오히려 죽음 그 자체를 깨부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일이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는 모든 선한 일은 우리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엄청 쏟아주신 사랑을 되갚는 일일 뿐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안심하고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속죄 제물로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의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그는 하느님 앞에 받아들여지는 한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는 단순한 입으로의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깡패짓을 하던 이가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고는 자신은 회개했다고 하면서 신도들에게 입만 번지르르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실제적인 삶 속에서는 신자들을 착취하고 부동산을 매입하고 전보다 더한 부귀 영화를 누린다면 그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지하고 되갚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반대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노력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랑’하십니다. 나의 하루의 삶과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상의 축복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느끼지 않습니다. 느낄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더이상 첨가되고 부어지는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있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랑을 쏟은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다시 하느님에게 사랑을 돌려 드리는 것이지요. 하느님 사랑의 완성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한 사람은 비로소 진정한 하느님의 면모를 알게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와 맥락을 달리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악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더 큰 사랑을 부어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지요.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 곧 당신과 같은 영을 지니신 분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분을 우리에게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단 한번의 유일한 제사를 치르신 셈이지요. 가장 고귀한 진리에 대한 세상의 죄악의 반란이었던 셈입니다. 세상의 악에 의해서 하느님의 진리와 선이 죽어 버린 듯 하였으나 하느님은 정반대의 일을 계획하신 것이지요. 오히려 죽음 그 자체를 깨부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일이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는 모든 선한 일은 우리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엄청 쏟아주신 사랑을 되갚는 일일 뿐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안심하고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속죄 제물로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의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그는 하느님 앞에 받아들여지는 한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는 단순한 입으로의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깡패짓을 하던 이가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고는 자신은 회개했다고 하면서 신도들에게 입만 번지르르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실제적인 삶 속에서는 신자들을 착취하고 부동산을 매입하고 전보다 더한 부귀 영화를 누린다면 그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지하고 되갚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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