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 15,16)
아직 자신의 종교를 ‘고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중에 나은 것을 고르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종교가 없으면 ‘무신론자’로 남겠다고 합니다. 모쪼록 그 어리석은 계획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이가 설령 종교를 ‘고른다’ 하더라도 그렇게 고른 종교에 올바로 참여할 리가 없습니다. 아니, 다른 종교라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딴 종교라면 상황은 다릅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예수님을 뽑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예수님이 우리를 골라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대꾸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뽑히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직행이란 말인가?’ 여기에서 민감한 분별이 요구됩니다.
하느님은 예외없이 모든 이를 부르십니다.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당신의 나라에 동참하기를 바라시지요.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의지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알면서도 선을 선택하지 않고 악을 선택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세상을 부르기에 앞서서 특별한 이들을 부르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불러서 특별해지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그 단체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느님에 의해서 특별히 불리운 집단입니다. 하지만 이는 특별히 선택되어서 우쭐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온세상에 알리는 것이지요. 즉, 선교는 교회의 기본 사명인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옵시다. 자신이 고른 종교에 참여하는 이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 이상의 과업이 부여되기 시작하면 자신이 매달려 있던 작은 줄을 끊어버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교리교사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나중에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을 지탱해 오던 기호가 끊어지고 이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요구가 시작되자 이들은 그만 용기를 잃어버리고 가장 먼저 교회의 손을 놓아 버리는 셈이지요.
주님의 선택을 믿는 사람, 우리의 하느님의 선택을 믿고 거기에 의지하는 사람은 그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욱 하느님에게, 주님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아직 자신의 종교를 ‘고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중에 나은 것을 고르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종교가 없으면 ‘무신론자’로 남겠다고 합니다. 모쪼록 그 어리석은 계획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이가 설령 종교를 ‘고른다’ 하더라도 그렇게 고른 종교에 올바로 참여할 리가 없습니다. 아니, 다른 종교라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딴 종교라면 상황은 다릅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예수님을 뽑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예수님이 우리를 골라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대꾸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뽑히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직행이란 말인가?’ 여기에서 민감한 분별이 요구됩니다.
하느님은 예외없이 모든 이를 부르십니다.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당신의 나라에 동참하기를 바라시지요.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의지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알면서도 선을 선택하지 않고 악을 선택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세상을 부르기에 앞서서 특별한 이들을 부르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불러서 특별해지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그 단체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느님에 의해서 특별히 불리운 집단입니다. 하지만 이는 특별히 선택되어서 우쭐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온세상에 알리는 것이지요. 즉, 선교는 교회의 기본 사명인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옵시다. 자신이 고른 종교에 참여하는 이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 이상의 과업이 부여되기 시작하면 자신이 매달려 있던 작은 줄을 끊어버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교리교사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나중에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을 지탱해 오던 기호가 끊어지고 이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요구가 시작되자 이들은 그만 용기를 잃어버리고 가장 먼저 교회의 손을 놓아 버리는 셈이지요.
주님의 선택을 믿는 사람, 우리의 하느님의 선택을 믿고 거기에 의지하는 사람은 그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욱 하느님에게, 주님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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