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 4,7-8)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을 완벽하게 실천해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가령, 우리가 곧잘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왜 그를 미워할까요? 미워하는 이유가 아마 수천가지는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워할 이유가 일만가지나 되어도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거슬림이 없다면 누구나 그 상대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인사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원한 품은 형제가 생각이 나면 가서 그 형제와 화해를 하고 돌아와 예물을 바치라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증오의 관계에 있으면서, 그리고 나 자신이 그에 대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앞에 나아와서 나를 잘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병에 뚜껑을 열지도 않고 다가와서 물을 받으려는 어리석은 행위와 같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앞에 사랑하려는 마음도 없이 다가와서 그분의 축복을 받겠다는 거지요. 그러니 될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압니다. 아니, 사랑하는 이라야 하느님을 압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을 완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을 완벽하게 실천해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가령, 우리가 곧잘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왜 그를 미워할까요? 미워하는 이유가 아마 수천가지는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워할 이유가 일만가지나 되어도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거슬림이 없다면 누구나 그 상대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인사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원한 품은 형제가 생각이 나면 가서 그 형제와 화해를 하고 돌아와 예물을 바치라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증오의 관계에 있으면서, 그리고 나 자신이 그에 대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앞에 나아와서 나를 잘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병에 뚜껑을 열지도 않고 다가와서 물을 받으려는 어리석은 행위와 같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앞에 사랑하려는 마음도 없이 다가와서 그분의 축복을 받겠다는 거지요. 그러니 될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압니다. 아니, 사랑하는 이라야 하느님을 압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을 완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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