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면 그의 길은 반드시 엇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배우자를 고르는 데에 있어서도 순전히 자기 취향으로 고르게 되고, 결국 그렇게 고른 배우자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될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런 내면을 지닌 이가 돈까지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지요. 돈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야욕을 이루는 데에는 최고의 수단이니까요. 사실 이런 내면을 지닌 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길러져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별다른 아쉬움이 없이 자라나는 아이일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지지요. 물론 가능성일 뿐입니다. 왜냐면 의식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소중한 가치들을 익히면서 자라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경우는 찾아보기 드뭅니다. 부모 역시도 그런 배경 속에서 자라와 참된 가치에 대한 교육이 미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고통을 겪어보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어느 순간부터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하느님께 더욱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별다른 아쉬움 없이 충분히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고, 때로 가지지 못하는 것은 참아 견딜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웃의 필요를 돌보기까지하니 저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사람인 셈이지요. 아무리 가져도 십원 한 푼 이웃에게 내밀지 못하는 이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풍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돈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필요한 것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특별히 다른 기도가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 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부분이지요. 사실 많은 이들이 이 기도를 바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바치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대부분 이 기도를 바친 다음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도가 나오지요. ‘제 사업이 성공하게...’, ‘제가 집을 사게...’,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가게...’ 등등과 같은 기도입니다.
먼저는 하느님과 마음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나서 뭐든 원하는 것을 청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제가 아픈 동안 하느님에게 낫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시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무리를 하면 안된다던가, 내 주변에 의외로 나를 돌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신다던가, 육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던가, 이 체험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더 훌륭한 가르침을 전해줄 수 있다던가 하는 등등이지요.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자신을 양보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요. 그리고 타인을 위해 참아 견디는 것을 미리 배운 이들은 아주 넓은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참아 견디기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에 있어서는 때로는 이끌어 나갈 필요도 있습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 앞에서 참아 견디는 것은 참아 견디는 게 아니라 비겁함일 뿐입니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하느님께 더욱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별다른 아쉬움 없이 충분히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고, 때로 가지지 못하는 것은 참아 견딜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웃의 필요를 돌보기까지하니 저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사람인 셈이지요. 아무리 가져도 십원 한 푼 이웃에게 내밀지 못하는 이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풍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돈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필요한 것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특별히 다른 기도가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 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부분이지요. 사실 많은 이들이 이 기도를 바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바치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대부분 이 기도를 바친 다음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도가 나오지요. ‘제 사업이 성공하게...’, ‘제가 집을 사게...’,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가게...’ 등등과 같은 기도입니다.
먼저는 하느님과 마음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나서 뭐든 원하는 것을 청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제가 아픈 동안 하느님에게 낫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시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무리를 하면 안된다던가, 내 주변에 의외로 나를 돌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신다던가, 육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던가, 이 체험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더 훌륭한 가르침을 전해줄 수 있다던가 하는 등등이지요.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자신을 양보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요. 그리고 타인을 위해 참아 견디는 것을 미리 배운 이들은 아주 넓은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참아 견디기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에 있어서는 때로는 이끌어 나갈 필요도 있습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 앞에서 참아 견디는 것은 참아 견디는 게 아니라 비겁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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