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머물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어둠 속이기 때문에 수치를 드러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물리적인 어둠이 있고, 지적인 어둠이 있으며, 영적인 어둠이 있지요. 물리적인 어둠은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시각’이라는 범주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지적인 범주의 어둠은 자신이 모르는 지식에 대한 부분을 조금 알게 됨으로써 마치 자신이 모두 안다고 착각하는 식으로 일어납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침묵하는 이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자신이 조금 아는 그 정보로 마치 모든 것을 꿰고 있다는 듯이 나서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자신이 지적으로 수치스럽게 옷을 벗고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문제가 ‘영적인 범주’에 이를 때에는 치명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구원과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 전혀 엉뚱한 방향을 걷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는 ‘의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바오로에게 일어났던 일이 바로 그러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가득한 교만과 시기심을 바라볼 눈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온갖 악한 일을 자행하면서도 ‘선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소경이 소경을 이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런 영적 소경들이 자기 스스로를 영적 스승으로 내세울 때에,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수많은 이들이 있을 때에 그들 모두는 어둠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수많은 그릇된 종교들, 사람을 현혹하는 가르침을 지닌 종교들이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영적인 눈을 뜬다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대단한 능력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무언가에 대한 교만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 겸손되이 처신하는 사람이 가장 영적 눈이 열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사람을 영적으로 눈멀게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이런 저런 의문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대놓고 겸손하라는 것이 교회 권위에 굴종하라는 것인가 하고 대들기도 할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필요한 것이 아니냐며 대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설명하는 것들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본 이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내용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물리적인 어둠이 있고, 지적인 어둠이 있으며, 영적인 어둠이 있지요. 물리적인 어둠은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시각’이라는 범주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지적인 범주의 어둠은 자신이 모르는 지식에 대한 부분을 조금 알게 됨으로써 마치 자신이 모두 안다고 착각하는 식으로 일어납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침묵하는 이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자신이 조금 아는 그 정보로 마치 모든 것을 꿰고 있다는 듯이 나서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자신이 지적으로 수치스럽게 옷을 벗고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문제가 ‘영적인 범주’에 이를 때에는 치명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구원과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 전혀 엉뚱한 방향을 걷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는 ‘의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바오로에게 일어났던 일이 바로 그러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가득한 교만과 시기심을 바라볼 눈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온갖 악한 일을 자행하면서도 ‘선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소경이 소경을 이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런 영적 소경들이 자기 스스로를 영적 스승으로 내세울 때에,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수많은 이들이 있을 때에 그들 모두는 어둠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수많은 그릇된 종교들, 사람을 현혹하는 가르침을 지닌 종교들이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영적인 눈을 뜬다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대단한 능력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무언가에 대한 교만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 겸손되이 처신하는 사람이 가장 영적 눈이 열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사람을 영적으로 눈멀게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이런 저런 의문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대놓고 겸손하라는 것이 교회 권위에 굴종하라는 것인가 하고 대들기도 할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필요한 것이 아니냐며 대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설명하는 것들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본 이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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