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 극화입니다. 물론 모든 극화들을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들에 약간의 공상을 섞은 것입니다. 우리는 장발장 안에서 아주 유명한 내용을 접합니다. 바로 장발장의 회개 부분입니다.
가난한 이가 찾아왔고 그를 극진히 대접한 사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가난한 이는 사제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고 가는 길에 잡혀 돌아온 그 앞에서 사제는 은촛대까지 내어줍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사제의 사랑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감동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극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저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 잠자리를 찾아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내어주지요. 목이 마르면 물을 주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가져다 주고, 그들에게 적절한 잠자리도 내어주곤 합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할 때에 ‘분별’이 필요합니다. 즉 상대의 내면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고양이 앞에 생선을 내어놓아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저 착하기만 하고 분별력이 없는 마음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만 함부로 집에 들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없던 나쁜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고, 나아가서 그러한 소문, 즉 내가 뭐든 내어준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면 제가 해야 할 본래적인 일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부딪히곤 합니다. 참으로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섰다가 그들이 우리 마음과 늘 같지는 않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뒤로는 그 공동체의 현실에 가장 적합한 규정을 세웁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 신부님도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낡은 옷에서 발견해서 가져오는 한국돈을 바꿔주다가 도리어 투덜거리는 걸 보고는 그 뒤로는 그걸 그만두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착한 것은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비둘기의 온순함과 뱀의 영리함을 모두 지녀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 가운데에는 단순히 선함만 있는 게 아니라, 지혜와 영특함과 같은 덕목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난한 이가 찾아왔고 그를 극진히 대접한 사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가난한 이는 사제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고 가는 길에 잡혀 돌아온 그 앞에서 사제는 은촛대까지 내어줍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사제의 사랑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감동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극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저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 잠자리를 찾아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내어주지요. 목이 마르면 물을 주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가져다 주고, 그들에게 적절한 잠자리도 내어주곤 합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할 때에 ‘분별’이 필요합니다. 즉 상대의 내면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고양이 앞에 생선을 내어놓아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저 착하기만 하고 분별력이 없는 마음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만 함부로 집에 들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없던 나쁜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고, 나아가서 그러한 소문, 즉 내가 뭐든 내어준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면 제가 해야 할 본래적인 일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부딪히곤 합니다. 참으로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섰다가 그들이 우리 마음과 늘 같지는 않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뒤로는 그 공동체의 현실에 가장 적합한 규정을 세웁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 신부님도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낡은 옷에서 발견해서 가져오는 한국돈을 바꿔주다가 도리어 투덜거리는 걸 보고는 그 뒤로는 그걸 그만두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착한 것은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비둘기의 온순함과 뱀의 영리함을 모두 지녀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 가운데에는 단순히 선함만 있는 게 아니라, 지혜와 영특함과 같은 덕목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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