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을 작은 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의 작은 마음방에는 문에 2개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빛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어둠의 문이지요. 우리가 곧잘 마음을 쓰는 것은 어둠의 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의 마음으로 자꾸 침투해 들어와서 어지럽혀 놓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어둠의 문 앞에 서서 그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철저히 감시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마음의 문을 여는 주인인 ‘의지’라는 친구는 너무나 힘이 약해서 곧잘 어둠의 문으로 들려오는 달콤한 유혹의 소리에 문을 열어버리고 말지요. 그렇게 무너져서 어둠의 문을 한 번 열고, 또 재빨리 닫으려고 하지만 또 유혹에 넘어가 두 번 열고… 그러는 동안 마음의 방에 자꾸 어둠이 쌓여가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에 가지고 있던 빛들이 조금씩 사라져가게 되지요. 이것이 적지 않은 이들의 현실입니다. 자신이 행하는 어두움의 행위들에 집중을 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하지만 유혹이라는 것은 더 강한 자극을 준비해서 번번이 우리를 넘어뜨려 버리고 맙니다.
방향이 틀렸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빛의 문으로 다가가서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빛의 문은 어떻게 열 것이며 빛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어둠의 문을 잘 단속하는 것도 잊으면 안되지만 늘 어둠의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빛의 문 앞에 더 자주 앉아 있으면서 그 문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단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빛을 이기지 못하는 어두움이 밀려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마음에는 어둠이 끼여들 구석이 없게 되지요. 어둠을 막아 마음의 방을 깨끗이 하는 게 아니라 빛을 자꾸 받아들여 마음이 절로 깨끗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서, 탄산음료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아는 꼬마가 탄산음료를 눈앞에 두고 저걸 먹지 말아야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니라, 몸에 좋은 음료, 보리차와 같은 것에 맛을 들이려고 애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리차에 맛을 들이고 보리차를 자꾸 마시다보면 어느새 탄산음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은 ‘율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의 문 앞에서 그걸 닫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둠의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빛의 문을 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어떤 것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 이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울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이 바람직하고 선하고 올바른 것일까? 이런 것들이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눈 앞에 맛깔스러운 불량식품을 두고 저걸 먹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말아야지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말게 됩니다. 모든 반복되는 죄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방향이 틀렸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빛의 문으로 다가가서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빛의 문은 어떻게 열 것이며 빛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어둠의 문을 잘 단속하는 것도 잊으면 안되지만 늘 어둠의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빛의 문 앞에 더 자주 앉아 있으면서 그 문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단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빛을 이기지 못하는 어두움이 밀려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마음에는 어둠이 끼여들 구석이 없게 되지요. 어둠을 막아 마음의 방을 깨끗이 하는 게 아니라 빛을 자꾸 받아들여 마음이 절로 깨끗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서, 탄산음료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아는 꼬마가 탄산음료를 눈앞에 두고 저걸 먹지 말아야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니라, 몸에 좋은 음료, 보리차와 같은 것에 맛을 들이려고 애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리차에 맛을 들이고 보리차를 자꾸 마시다보면 어느새 탄산음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은 ‘율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의 문 앞에서 그걸 닫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둠의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빛의 문을 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어떤 것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 이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울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이 바람직하고 선하고 올바른 것일까? 이런 것들이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눈 앞에 맛깔스러운 불량식품을 두고 저걸 먹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말아야지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말게 됩니다. 모든 반복되는 죄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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