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할 상황이 다가오면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 인내해야 할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은 전혀 다른 두가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연습과 실패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착각하고 자신이 아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에베레스트 산의 등정에 대한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 산을 오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지극히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거룩하지 않고 생각만큼 착하지도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적인 이슈로 함께 분노할 때에 그것이 삶의 특정 부분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댓글을 남긴다고 내가 그 사회의 불의에 싸우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나약한 사람이 당한다고 화를 내고 댓글을 남기고 실제 삶 안에서는 내 주변의 나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미워하고 짖밟으려고 든다면 나는 ‘위선자’의 탈을 쓴 사람일 뿐입니다.
때로 인터넷 상에서 제가 ‘직접 산 모습’을 남기고 나면 때로는 자신의 명철한 분석으로 ‘그건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라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말들 중에서 일리가 있는 말들은 받아들이지만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것들이고 겪어 나가야 하는 것들이지요. 우리는 저마다 삶의 보따리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실제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보따리에는 저마다 지닌 보화들이 있고 그것을 실제로 마주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론가가 되라고 부탁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와서 보라’고 하셨고 ‘나를 따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조건 가난하고 소외된 동네를 찾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가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착각하고 자신이 아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에베레스트 산의 등정에 대한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 산을 오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지극히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거룩하지 않고 생각만큼 착하지도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적인 이슈로 함께 분노할 때에 그것이 삶의 특정 부분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댓글을 남긴다고 내가 그 사회의 불의에 싸우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나약한 사람이 당한다고 화를 내고 댓글을 남기고 실제 삶 안에서는 내 주변의 나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미워하고 짖밟으려고 든다면 나는 ‘위선자’의 탈을 쓴 사람일 뿐입니다.
때로 인터넷 상에서 제가 ‘직접 산 모습’을 남기고 나면 때로는 자신의 명철한 분석으로 ‘그건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라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말들 중에서 일리가 있는 말들은 받아들이지만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것들이고 겪어 나가야 하는 것들이지요. 우리는 저마다 삶의 보따리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실제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보따리에는 저마다 지닌 보화들이 있고 그것을 실제로 마주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론가가 되라고 부탁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와서 보라’고 하셨고 ‘나를 따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조건 가난하고 소외된 동네를 찾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가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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