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근면함과 번잡함을 혼동하곤 합니다. 근면함은 해야 할 일을 제 때에 하는 것이고, 번잡함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방학때면 늘 이 ‘번잡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학기 중에 배우던 과목들 가운데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이 책, 저 책을 모두 끌어안고 살고 싶었지만 정작 방학을 해서 나가면 공부는 커녕 성무일도라도 제때에 바치면 다행이었습니다. 그러한 삶을 여러번 반복했지만 결국 다음 방학이 돌아오면 여전히 같은 시달림을 겪어야 했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뿐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요. 참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이 명제를 우리 인간들이 어두운 정신으로 흩뜨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이거라고 주장하고, 이걸 해야 한다 우기고, 아니라고 저걸 해야 한다고 서로 싸우고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공연한 데에 정신을 팔기 일쑤이지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여기 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조금만 멈춰서서 생각을 하면 적지 않은 일들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일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럴 여유조차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삶을 점검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무나 바쁩니다. 정신없이 바쁘지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번잡함은 시작됩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는데 이게 몸에 좋으니 이걸 먹어야 한다, 아니다 저걸 먹어야 한다 하면서 ‘건강’이라는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사에 시달려야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시작하지요. 하지만 정말 아이가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대학 입시’를 위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학 입시라는 것도 아이가 들어가고 싶어서 정해진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들어가면 그나마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취직’이라는 현실이 숨통을 조여오고 ‘결혼’이라는 문제도 있지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또다시 밀려드는 일상의 고난들이 있지요. 그러다보면 자식 문제가 대두되고, 몸은 늙어가고 결국 노후대책이 고민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마지막을 맞이하지요.
남들이 다 살아가는 삶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을 뿐입니다. 내 삶은 뭔가 다르겠지 생각하겠지만 결국 우리가 따라가는 삶의 방향 안에서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비슷한 셈이지요. 그 가운데 돈 좀 더 있으면 더 사치스런 버전으로 고민하고, 돈이 부족하면 조금 가난한 버전으로 고민할 뿐입니다. 근본적인 삶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코헬렛의 저자는 ‘하루하루의 수고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요.
번잡하게 살지 않도록 하십시오. 매사에 기쁨과 행복을 찾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이 우리더러 예언자 요나가 되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누릴 것 누리고 나눌 것 나누면서 살면 됩니다. 설령 요나가 되라고 해도 내어주시는 길 따라서 가면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도 살아나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것이 근면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이지요.
저는 신학교에서 방학때면 늘 이 ‘번잡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학기 중에 배우던 과목들 가운데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이 책, 저 책을 모두 끌어안고 살고 싶었지만 정작 방학을 해서 나가면 공부는 커녕 성무일도라도 제때에 바치면 다행이었습니다. 그러한 삶을 여러번 반복했지만 결국 다음 방학이 돌아오면 여전히 같은 시달림을 겪어야 했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뿐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요. 참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이 명제를 우리 인간들이 어두운 정신으로 흩뜨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이거라고 주장하고, 이걸 해야 한다 우기고, 아니라고 저걸 해야 한다고 서로 싸우고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공연한 데에 정신을 팔기 일쑤이지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여기 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조금만 멈춰서서 생각을 하면 적지 않은 일들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일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럴 여유조차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삶을 점검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무나 바쁩니다. 정신없이 바쁘지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번잡함은 시작됩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는데 이게 몸에 좋으니 이걸 먹어야 한다, 아니다 저걸 먹어야 한다 하면서 ‘건강’이라는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사에 시달려야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시작하지요. 하지만 정말 아이가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대학 입시’를 위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학 입시라는 것도 아이가 들어가고 싶어서 정해진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들어가면 그나마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취직’이라는 현실이 숨통을 조여오고 ‘결혼’이라는 문제도 있지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또다시 밀려드는 일상의 고난들이 있지요. 그러다보면 자식 문제가 대두되고, 몸은 늙어가고 결국 노후대책이 고민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마지막을 맞이하지요.
남들이 다 살아가는 삶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을 뿐입니다. 내 삶은 뭔가 다르겠지 생각하겠지만 결국 우리가 따라가는 삶의 방향 안에서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비슷한 셈이지요. 그 가운데 돈 좀 더 있으면 더 사치스런 버전으로 고민하고, 돈이 부족하면 조금 가난한 버전으로 고민할 뿐입니다. 근본적인 삶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코헬렛의 저자는 ‘하루하루의 수고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요.
번잡하게 살지 않도록 하십시오. 매사에 기쁨과 행복을 찾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이 우리더러 예언자 요나가 되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누릴 것 누리고 나눌 것 나누면서 살면 됩니다. 설령 요나가 되라고 해도 내어주시는 길 따라서 가면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도 살아나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것이 근면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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