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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인 성당 후원자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겸손과 기도

반갑습니다. 저는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에서 현지인 대상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마진우 요셉 신부라고 합니다. 선교지를 기억해 주시는 여러 후원자분들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저는 볼리비아에 2008년도부터 왔고 원래대로라면 2013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하지만 여러가지 현지 사정으로 제가 북쪽에 위치한 지금의 본당을 잠시 더 맡기로 했고 , 지금 이 곳 본당은 작년(2013년)부터 허진혁 바오로 신부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번 미주 사제 모임때 인사드린 김대식 토마스 신부는 이미 2013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곳 본당은 이제 겨우 8년째 되는 본당입니다. 허허 벌판 아무것도 없던 곳에 길거리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지금은 아주 이쁜 성당을 지니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 동네 이름이 Satelite Norte(북쪽 위성)라고 해서 도시 근교에 위치한 곳이라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어서 이제는 주일 교중미사(여기는 오전 8시 미사를 사람들이 더 선호해서 8시 미사가 교중 미사입니다.)에는 사람들이 성당을 꽉 채우고 성당 주변으로도 둘러서 있는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늘어나는 수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어서 내적으로 사람들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한 현실입니다.

이곳 현지의 문제는 단순한 ‘돈의 부족’이 아니라 참된 길을 찾는 방법과 그 길을 실제적으로 가르쳐 줄 사람, 즉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저마다 사랑이 부족하다고만 하면서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분열되어가는 중에 제가 할 일은 그 사람들을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모아 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과연 이 곳의 사람들의 기본적인 능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바라볼 필요가 있었지요. 그리고 해 오던 후원 사업도 하던 대로 행하면서 지켜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이미 여러분들에게 메일로 전해드린 그대로 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건네면 그 사람의 생활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생력을 상실하게 되고 복음의 메세지가 전해져야 할 곳에 물질적 욕구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의 변화를 건의드린 것이고 올해 보내주신 후원금은 본당의 자생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저 나름 분주히 사용처를 찾아 도와주었습니다. (아마 제 페이스북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https://www.facebook.com/semitoon 모든 자료는 공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보시면 됩니다.)

올해는 초반에는 조금 바빴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의식있는 교리교사들이었지요. 연초에 그들을 양성시키는 데에 주력해야 했고 그래서 뽑아낸 교리교사들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에 그들과 만나서 그들이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던지고 지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주 화요일의 공소 성경강의와 수요일의 본당 성경강의(마르코와 요한 강좌를 끝내었고, 마태오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첨부 파일로 제 강의록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혼배 교육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반까지 세례 교육에도 신경을 썼는데 6월부터 보좌 신부님에게 맡겼고 지금은 보좌 신부님도 이를 잘 수행해 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가 주력하는 부분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구역의 모든 사람들이 성전이 있는 본당에 모여드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 교리교육을 보좌 신부님에게 맡기고 저는 기초 공동체 건설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이제 이곳은 12월을 맞이하여 성탄 준비를 슬슬 해 나가고 있습니다. 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지요. 아무래도 성탄의 기쁨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저런 선물도 준비하고, 본당을 성탄의 기쁨을 드러내는 분위기로 바꾸는 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움직임이고 내적으로는 이들의 신앙을 추스리는 것이 되겠지요.

거듭 후원자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지극히 낮은 모습으로 오신 우리의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 전혀 의외의 곳에 머물러 계실 아기 예수님을 일상 안에서 찾아보시는 후원자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축복 가득 전합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에서
마진우 요셉 신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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