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근처 공소 미사에 갔습니다. 원래는 보좌 신부님이 담당하는 공소인데 자리를 비우게 되어 제가 가게 되었지요. 사람들이 모두 우루루 뒷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뒤로 가서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그거 아세요?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 더 가까이 붙지 못해 안달이예요. 조금이라도 더 손을 잡으려 하고, 입을 맞추려 하고, 껴안으려 하지요.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는 거예요. 헌데 여러분들은 어떻게든 제단에서 떨어지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왜 예수님을 겁을 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와서 앉아 있는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지요.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좀비처럼 응답했습니다. 그 응답 안에는 어떠한 간절함도 애정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늘 하던 미사이고, 늘 하던 대답일 뿐이었습니다. 강론 시간을 빌어 신앙의 소중함에 대해서 역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이 느껴졌지요. 미사를 마치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정말 값비싸고 소중한 보물이 있어요. 헌데 이 보물은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나에게는 3배, 4배 아니 수십배로 늘어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보물을 다른 이에게 선물하겠어요, 아니면 그냥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겠어요?”
“줄거예요.”
“신앙이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우리 안에 고인 채로 있으면 시간이 흘러 썩기 시작하고 냄새를 피우기 시작해요. 그 신앙에는 그 어떤 기쁨도 없고 그래서 남에게 건네줄 수도 없지요. 우리의 신앙은 오직 다른 이에게 건네줄 때에만 생생하게 살아있게 되고 활기를 띄게 되고 기쁨으로 가득차는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공동체에는 죽은 신앙, 오직 자신의 구원만 걱정하는 이기적인 신앙만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제가 왜 이렇게 열을 내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하든 여러분은 다시 같은 걸 반복할 뿐인데 말이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가족이 좀 태워 달라고 해서 태워 주었습니다. 그 시간마저 아까워서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없는 사람이 빛을 볼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맞아요. 눈이 없으면 빛을 볼 수 없지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마음은 예수님이 바로 곁에 지나가도 알지 못해요. 하지만 훗날에 그들은 예수님을 찾을 거예요. 자신들에게 위중한 일, 급박한 일이 닥쳤을 때 말이지요. 그제서야 그들은 예수님의 필요를 느끼고 간절히 찾겠지만 아마 찾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장님이니까 말이예요. 지금 우리 아주 가까이 있는 그 분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훗날에 가서 그분을 알아볼 수 있겠어요? 안그래요?”
“신부님, 우리 동네 사람들은 신앙에 관심이 없어요.”
“맞아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사람들은 좋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진 신앙을 수치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겁을 내면 그 누구도 신앙에 대해서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연스레 신앙에 대해서 관심이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단순히 그들 탓만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탓이지요.”
“그거 아세요?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 더 가까이 붙지 못해 안달이예요. 조금이라도 더 손을 잡으려 하고, 입을 맞추려 하고, 껴안으려 하지요.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는 거예요. 헌데 여러분들은 어떻게든 제단에서 떨어지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왜 예수님을 겁을 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와서 앉아 있는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지요.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좀비처럼 응답했습니다. 그 응답 안에는 어떠한 간절함도 애정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늘 하던 미사이고, 늘 하던 대답일 뿐이었습니다. 강론 시간을 빌어 신앙의 소중함에 대해서 역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이 느껴졌지요. 미사를 마치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정말 값비싸고 소중한 보물이 있어요. 헌데 이 보물은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나에게는 3배, 4배 아니 수십배로 늘어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보물을 다른 이에게 선물하겠어요, 아니면 그냥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겠어요?”
“줄거예요.”
“신앙이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우리 안에 고인 채로 있으면 시간이 흘러 썩기 시작하고 냄새를 피우기 시작해요. 그 신앙에는 그 어떤 기쁨도 없고 그래서 남에게 건네줄 수도 없지요. 우리의 신앙은 오직 다른 이에게 건네줄 때에만 생생하게 살아있게 되고 활기를 띄게 되고 기쁨으로 가득차는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공동체에는 죽은 신앙, 오직 자신의 구원만 걱정하는 이기적인 신앙만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제가 왜 이렇게 열을 내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하든 여러분은 다시 같은 걸 반복할 뿐인데 말이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가족이 좀 태워 달라고 해서 태워 주었습니다. 그 시간마저 아까워서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없는 사람이 빛을 볼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맞아요. 눈이 없으면 빛을 볼 수 없지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마음은 예수님이 바로 곁에 지나가도 알지 못해요. 하지만 훗날에 그들은 예수님을 찾을 거예요. 자신들에게 위중한 일, 급박한 일이 닥쳤을 때 말이지요. 그제서야 그들은 예수님의 필요를 느끼고 간절히 찾겠지만 아마 찾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장님이니까 말이예요. 지금 우리 아주 가까이 있는 그 분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훗날에 가서 그분을 알아볼 수 있겠어요? 안그래요?”
“신부님, 우리 동네 사람들은 신앙에 관심이 없어요.”
“맞아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사람들은 좋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진 신앙을 수치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겁을 내면 그 누구도 신앙에 대해서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연스레 신앙에 대해서 관심이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단순히 그들 탓만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탓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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