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남미 볼리비아에 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일단은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아무리 나의 문화와 달라도 일단은 수용하고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의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문화든지 ‘허용범위’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아이가 어른에게 막 대하는 것은 아무리 남미라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고, 이들의 문화 속에서도 ‘예의’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내적인 공통점을 찾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적인 공통점은 보다 범 인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지요. 바로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었고, 그와 반대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무관심과 증오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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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 글을 쓰는데 교리교사가 와서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제 컴퓨터를 보고 뭘 쓰고 있었냐고 묻길래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리교사가 말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볼리비아는 문화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 같아요. 책임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출발점이 다를 뿐이고 관점이 다를 뿐이야. 예를들어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더 많은 것을 이미 지니고 시작하게 되지. 그래서 그 시작점에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가고 정체되어 있는가를 봐야해.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 아이가 머무는 곳에서부터 진보하는 것을 살펴야 하지. 만일 한국에서 40부터 시작해서 60을 이룬 사람과 볼리비아에서 10부터 시작해서 50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언뜻 외적으로 보기에 한국 사람이 더 많은 성과를 이룬 듯 하겠지만 실제로는 볼리비아의 아이가 더 많은 성과를 이룬거야. 그래서 사람은 그 외적으로 분별해서는 안되고 내적인 가치들로 분별해야 하는거야.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은 일용직 막노동을 해도 거기에서 책임감을 다 해낼 거고, 반대로 게으른 사람은 아무리 대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해도 게으를 뿐이야.”
그렇게 설명을 하니 “아~”하고 알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출발점이 다를 뿐, 각자가 한 노력은 하느님 앞에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마약과 총기에서 안전한 한국과 상시적으로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대하는 현실은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훗날 각자는 하느님 앞에서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 하였느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의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문화든지 ‘허용범위’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아이가 어른에게 막 대하는 것은 아무리 남미라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고, 이들의 문화 속에서도 ‘예의’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내적인 공통점을 찾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적인 공통점은 보다 범 인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지요. 바로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었고, 그와 반대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무관심과 증오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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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 글을 쓰는데 교리교사가 와서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제 컴퓨터를 보고 뭘 쓰고 있었냐고 묻길래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리교사가 말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볼리비아는 문화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 같아요. 책임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출발점이 다를 뿐이고 관점이 다를 뿐이야. 예를들어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더 많은 것을 이미 지니고 시작하게 되지. 그래서 그 시작점에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가고 정체되어 있는가를 봐야해.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 아이가 머무는 곳에서부터 진보하는 것을 살펴야 하지. 만일 한국에서 40부터 시작해서 60을 이룬 사람과 볼리비아에서 10부터 시작해서 50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언뜻 외적으로 보기에 한국 사람이 더 많은 성과를 이룬 듯 하겠지만 실제로는 볼리비아의 아이가 더 많은 성과를 이룬거야. 그래서 사람은 그 외적으로 분별해서는 안되고 내적인 가치들로 분별해야 하는거야.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은 일용직 막노동을 해도 거기에서 책임감을 다 해낼 거고, 반대로 게으른 사람은 아무리 대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해도 게으를 뿐이야.”
그렇게 설명을 하니 “아~”하고 알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출발점이 다를 뿐, 각자가 한 노력은 하느님 앞에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마약과 총기에서 안전한 한국과 상시적으로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대하는 현실은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훗날 각자는 하느님 앞에서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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