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은 현명해야 합니다. 막아서 막을 수 있는 것은 막아야 하겠지만 막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사람의 욕구의 결과물은 그 순간을 다해서 막을 수 있겠지만 결국 그 사람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 하고 싶은 걸 다시금 재고하게 도와주어 그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의 방향을 수정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결국 지나갑니다. 우리의 세대가 지나가고 나면 다음 세대가 이어지지요. 지금의 악인들에게 맞서서 그들이 하는 활동을 들고 나서서 막는다고 뭔가 달라질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욕구를 이루고 말 것이니까요.
수압이 가득찬 수도관이 있다면 물은 반드시 새어 나오게 마련입니다. 한 곳이 터지고 그 곳을 고치고 나면 다른 곳에서 언젠가는 누수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터진 수도관을 매번 고칠 수는 있겠지만 원초적으로 향후 그 어떤 수도관도 터지지 않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수압’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살아있게 마련이고 수도관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압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모든 이의 수압, 즉 모든 이의 욕구를 일시적으로 낮추는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상에 사는 동안 늘 문제를 안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엇나간 마음을 지닌 이들이 늘 비열한 방법으로 지상의 권력을 잡게 마련이고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일들은 늘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그들 앞에서 그 일이 옳지 않다고 외쳐댄다고 그들이 마음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강력히 반대하는 우리들 앞에서 주춤할 수는 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이 그 일이 양심에 어긋난다는 걸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알고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효율성이 우선이니까요. 그리고 그 효율성의 중심에는 자신의 욕구가 존재합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사람의 담배를 빼앗으면 그 순간의 흡연은 막을 수 있지만 결국 그는 언제고 나가서 담배를 사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흡연을 다시 즐기게 되겠지요. 우리가 그를 24시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에게 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짧은 생애 동안 그가 헌신하려는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 진정으로 사람을 내면에서부터 기쁘게 만드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들이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과 무엇보다도 그들을 향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들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인지라 사랑의 언어에는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그들이 화들짝 놀라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요.
제가 뜬구름 잡는 것처럼 설명을 해서 이해하려는 분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면 분노할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듣고 자신의 방향을 수정할 것이고, 아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글 자체가 이 작업이 지닌 난해함과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결국 지나갑니다. 우리의 세대가 지나가고 나면 다음 세대가 이어지지요. 지금의 악인들에게 맞서서 그들이 하는 활동을 들고 나서서 막는다고 뭔가 달라질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욕구를 이루고 말 것이니까요.
수압이 가득찬 수도관이 있다면 물은 반드시 새어 나오게 마련입니다. 한 곳이 터지고 그 곳을 고치고 나면 다른 곳에서 언젠가는 누수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터진 수도관을 매번 고칠 수는 있겠지만 원초적으로 향후 그 어떤 수도관도 터지지 않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수압’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살아있게 마련이고 수도관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압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모든 이의 수압, 즉 모든 이의 욕구를 일시적으로 낮추는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상에 사는 동안 늘 문제를 안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엇나간 마음을 지닌 이들이 늘 비열한 방법으로 지상의 권력을 잡게 마련이고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일들은 늘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그들 앞에서 그 일이 옳지 않다고 외쳐댄다고 그들이 마음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강력히 반대하는 우리들 앞에서 주춤할 수는 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이 그 일이 양심에 어긋난다는 걸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알고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효율성이 우선이니까요. 그리고 그 효율성의 중심에는 자신의 욕구가 존재합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사람의 담배를 빼앗으면 그 순간의 흡연은 막을 수 있지만 결국 그는 언제고 나가서 담배를 사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흡연을 다시 즐기게 되겠지요. 우리가 그를 24시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에게 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짧은 생애 동안 그가 헌신하려는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 진정으로 사람을 내면에서부터 기쁘게 만드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들이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과 무엇보다도 그들을 향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들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인지라 사랑의 언어에는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그들이 화들짝 놀라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요.
제가 뜬구름 잡는 것처럼 설명을 해서 이해하려는 분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면 분노할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듣고 자신의 방향을 수정할 것이고, 아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글 자체가 이 작업이 지닌 난해함과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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