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마태 5,11)
저는 강론대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사람들의 악습을 고치도록 돕고 선한 일을 하도록 가르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사랑합니다. 그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제가 강론대에서 속시원하게 하니까요. 저를 사랑하는 이들은 주로 매맞는 아내들, 성폭력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들, 부모와 대화하지 못하고 늘 주눅들어 지내는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늘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저에게 축복을 청합니다.
반면, 늘 성당 뒷구석에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성당을 나오기는 하는데 제가 하는 말이 영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입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일주일동안 번 돈으로 술을 진탕 마시는 이들, 지금의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 아내를 구타하고 아이들을 두드려패는 이들입니다.
뒤에서 무슨 말이 오고갈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임신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저런 귀가 열리게 되어서 때로는 들을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어느새 한측에서는 ‘나쁜 신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신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의 한 인간으로서 저는 제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제 육신도 약하고 정신도 약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저에게서 부족한 점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점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압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제가 한 이야기들은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가지는 것들 가운데에서 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했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들을 더 사랑하도록 도울 수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헌데 그런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성가심이 되고 저를 비난할 거리가 된다면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하느님에게 맡겨드리는 수 밖에요.
앞으로도 저는 제가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은 결국 저를 더 좁은 길로 인도할 것이며, 저는 제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을 얻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강론대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사람들의 악습을 고치도록 돕고 선한 일을 하도록 가르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사랑합니다. 그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제가 강론대에서 속시원하게 하니까요. 저를 사랑하는 이들은 주로 매맞는 아내들, 성폭력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들, 부모와 대화하지 못하고 늘 주눅들어 지내는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늘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저에게 축복을 청합니다.
반면, 늘 성당 뒷구석에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성당을 나오기는 하는데 제가 하는 말이 영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입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일주일동안 번 돈으로 술을 진탕 마시는 이들, 지금의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 아내를 구타하고 아이들을 두드려패는 이들입니다.
뒤에서 무슨 말이 오고갈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임신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저런 귀가 열리게 되어서 때로는 들을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어느새 한측에서는 ‘나쁜 신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신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의 한 인간으로서 저는 제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제 육신도 약하고 정신도 약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저에게서 부족한 점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점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압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제가 한 이야기들은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가지는 것들 가운데에서 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했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들을 더 사랑하도록 도울 수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헌데 그런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성가심이 되고 저를 비난할 거리가 된다면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하느님에게 맡겨드리는 수 밖에요.
앞으로도 저는 제가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은 결국 저를 더 좁은 길로 인도할 것이며, 저는 제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을 얻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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