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특징은 숨쉬지 않고 멈춰 있고 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이들은 몸에 벌레가 기어다녀도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몸 속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갉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지경이지요.
영적으로 죽은 이들, 내면이 죽은 이들의 특징은 내면의 활동이 멈춰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적으로 다가오는 그 어떤 위협과 유혹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겉으로만 보면 화려해 보입니다. 온갖 맛있는 음식을 보여주고 그것을 사먹도록 종용하고 나아가 좋은 상품들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구입하게 하지요. 화려하고 멋들어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내면이 죽은 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내면에 지닌 죽음의 독소, 벌레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화려하게 외면을 꾸미는 데에 최대한 신경을 씁니다.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여행지, 더 값비싼 것들을 챙기는 데에 최선을 다하지요. 하지만 그 이면으로 내면이 갈수록 더 힘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언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하면, 그들이 ‘선행’을 해야 할 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서 자동이체로 돈을 보내는 식의 선행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선행이란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바로 나의 일상과 직결되어 있고 내 곁의 형제 자매와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희생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에 우리는 선행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이지요. 하다못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주는 것조차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겸손도 인내도 선도 사랑도 내면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셈입니다.
내면이 죽은 이들이 늘어감에도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외모는 그 누구보다도 더 생기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잘 외적인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다가갑니다. 하지만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죽어 있으며 그들의 죽음의 독소가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분별없이 받아들이다가는 내면으로 서서히 죽음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이들, 내면이 죽은 이들의 특징은 내면의 활동이 멈춰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적으로 다가오는 그 어떤 위협과 유혹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겉으로만 보면 화려해 보입니다. 온갖 맛있는 음식을 보여주고 그것을 사먹도록 종용하고 나아가 좋은 상품들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구입하게 하지요. 화려하고 멋들어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내면이 죽은 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내면에 지닌 죽음의 독소, 벌레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화려하게 외면을 꾸미는 데에 최대한 신경을 씁니다.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여행지, 더 값비싼 것들을 챙기는 데에 최선을 다하지요. 하지만 그 이면으로 내면이 갈수록 더 힘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언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하면, 그들이 ‘선행’을 해야 할 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서 자동이체로 돈을 보내는 식의 선행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선행이란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바로 나의 일상과 직결되어 있고 내 곁의 형제 자매와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희생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에 우리는 선행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이지요. 하다못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주는 것조차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겸손도 인내도 선도 사랑도 내면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셈입니다.
내면이 죽은 이들이 늘어감에도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외모는 그 누구보다도 더 생기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잘 외적인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다가갑니다. 하지만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죽어 있으며 그들의 죽음의 독소가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분별없이 받아들이다가는 내면으로 서서히 죽음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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