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실없이 웃으면서 머리카락을 배배 꼬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흔히 ‘미쳤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인지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을 분별해 낼 사전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교회를 진단할 때에 세속적으로 물든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 진단을 맡기면 교회는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컴퓨터를 분해하라고 했더니 드라이버를 들고 오는 게 아니라 부엌 가위를 들고 와서 모니터를 자르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교회를 바라볼 때에는 언제나 ‘신비적 차원’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를 상실하면 교회는 인간 집단으로만 바라보게 되고 어느 인간 집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오류들이 상존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껍데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성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는 교회의 온 지체를 온전히 바라보시면서 강한 이들로 약한 이들을 보듬어 주십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희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약하면 사제가 힘을 내어 신자들을 교육시키고 바로세우며, 반대로 사제가 약하면 신자들이 기도와 도움으로 사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안에 활동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 즉 교회의 신비적 차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수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셨을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마저도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저로서는 또다시 제가 가야 할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크신 손길로 쓰러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엇나간 것을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의지의 동의를 통해서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를 진단할 때에 세속적으로 물든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 진단을 맡기면 교회는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컴퓨터를 분해하라고 했더니 드라이버를 들고 오는 게 아니라 부엌 가위를 들고 와서 모니터를 자르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교회를 바라볼 때에는 언제나 ‘신비적 차원’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를 상실하면 교회는 인간 집단으로만 바라보게 되고 어느 인간 집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오류들이 상존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껍데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성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는 교회의 온 지체를 온전히 바라보시면서 강한 이들로 약한 이들을 보듬어 주십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희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약하면 사제가 힘을 내어 신자들을 교육시키고 바로세우며, 반대로 사제가 약하면 신자들이 기도와 도움으로 사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안에 활동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 즉 교회의 신비적 차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수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셨을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마저도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저로서는 또다시 제가 가야 할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크신 손길로 쓰러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엇나간 것을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의지의 동의를 통해서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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