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부부와 신앙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하느님?
2일차 성숙한 관계
관계란 무엇인가?
종속적 관계, 성숙한 관계?
관계
사물과의 관계
우리는 물건들과도 관계를 맺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소유하고 그것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일을 다 했을 때에는 그것들을 내버려두지요. 그저 다만 내 최소한의 책임을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물건과 맺는 관계입니다.
동물과의 관계
동물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동물들을 만나지만 그 가운데에는 특별한 만남을 이루어 집에서 나의 책임 하에 돌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동물을 돌볼 책임을 지고 그 동물은 나에게 복종합니다.
인간과의 관계
나아가 우리는 서로간에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상호적인 관계이어야 합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나아가 그도 나를 사랑하는 관계가 바로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입니다. 물론 앞서의 관계의 장점을 다 수용합니다. 나는 그를 책임져야 하고 돌보아야 하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통해 이해를 추구하고 보다 심도깊은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유하려는 인간
제 필요할 때에만 누구를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가 끝나고 나면 가차없이 던져 버리는 이들이 있지요. 바로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인간입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늘 사물과만 관계를 맺어온 탓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들은 형제도 자매도 심지어는 부모도 마찬가지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때로 나타나는 현상이 나이든 부모를 돌보기는 커녕 내다버리는 것이지요.
복종 시키려는 인간
타인을 '동물'로 생각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들은 타인을 '폭력'으로 억압하려고 하지요. 동물에게조차도 때로는 이해와 사랑이 필요할진데 이들은 타인을 동물보다도 못하게 다룹니다. 이들은 누르고 억압해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힘이 상대보다 못하게 될 때에 고스란히 모든 걸 되돌려 받으면서 후회를 하지요.
성숙한 인간
우리는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합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니고 상대를 복종 시키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이지요. 나아가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어둠의 길을 걸을 때에 충고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마약에 빠져들어가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감싸 안아주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지요. 상대가 도둑질을 해서 나에게 선물을 사 주려고 하는데 그걸 그냥 좋다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은 '의로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의 더 높은 '관계'를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인간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지요. 그저 인간끼리만 사랑을 하면 앞서의 이기적인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인간 관계도 하느님과의 관계만큼 진솔하고 영속적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하고 최고로 두어야 비로소 그 다음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3일차 남녀의 성
성의 본질적인 의미
교회 성윤리
성(性)
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남성과 여성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하느님은 이 차별 아닌 차이를 두고 어떠한 역할을 바라셨을까요?
교회는 인간의 성적 차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YOUCAT 400항
인간은 성적 존재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심으로써, 그들이 서로 위하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성적 욕구와 쾌감을 느끼는 능력을 주셨고, 그로써 생명을 계속 전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교회는 남녀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고 가르칩니다.
YOUCAT 401항
성적 우위가 실제로 존재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똑같이 선물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창조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도록 둘의 역할을 나누어 두신 것입니다. 문제는 이 '다름'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다름을 다루어 온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배층은 언제나 육체적으로 우위를 선점해 온 '남성'이 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역사는 남자들의 일을 위주로 쓰여지고 온갖 주요 직책은 남성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성은 음지로 밀려나게 되었지요. 오늘날의 페미니즘과 같은 반발은 역사속에서 고질적으로 이루어진 병폐에 반해서 일어나는 움직임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전적으로 옳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때로는 차이마저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그 존엄성에서는 동일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징'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나지요. 아이를 잉태할 자궁과 그 아이를 키울 젓가슴은 여성의 몫이고 가족을 먹여살릴 힘을 간직한 근육질의 몸은 남성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여성의 천부적인 부드러움은 남성이 따라갈 수 없으며 남성의 천부적인 강인함도 쉽게 바뀌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핵심은 '사랑'입니다. 서로 돕고 채우고 돌보아 주어야 남성과 여성은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동정 마리아, 즉 여성의 동의가 없었더라면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이 사랑을 잊은 세상의 그 어떤 움직임도 정당화 될 수 없고 곧잘 옆길로 엇나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날 여성들이 권익을 회복한다고 해도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운동은 그들을 장님으로 만들어 그릇된 길을 걷게 할 것이고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도 '사랑'이 없다면 곧잘 스스로를 멸망으로 이끄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성폭행, 구타, 폭언과 같은 모든 일들은 바로 이 '사랑'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즉 '차별'을 고려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차별'을 살피고 개선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로지 살벌한 전쟁터만이 남게 될 뿐입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남자와 여자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게 될 것입니다.
4일차 혼배성사
성사란 무엇인가?
혼배성사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혼인성사
성사 -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게 드러내는 것
혼인성사 - 신랑과 신부가 하느님 앞에 하나 될 것을 서약하는 것
세가지 요소
1) 자유 의지에 의한 결혼 동의
2) 평생 독점적인 관계에 대한 동의
3) 출산 용의
3 elementos
1) El consentimiento expresado en libertad
2) La aceptación de una unión exclusiva y para toda la vida
3) La apertura a los hijos.
*Matrimonio Cristiano es la conciencia de la pareja de ser una imagen viva del amor entre Cristo y su Iglesia.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Unidad y Indisolubilidad
그리스도교의 혼인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것에 바탕을 둡니다. 간단히 말해서 양자가 서로 지치더라도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계약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서로에게 충실한다는 개념이지요.
살다보면 지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아무리 실망하더라도 그 상대 배우자를 죽기 직전까지 믿어주는 하느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슬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혼인 전에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다잡고 하느님 앞에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혼인의 분명한 특징입니다.
혼인
혼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제가 즐겨 쓰는 비유는 '몸'에 관한 것입니다. 강론때면 늘 양손을 앞으로 내어놓고 이런 설명을 시작합니다.
"보세요. 여기 두 손이 있죠? 서로 모양이 다릅니다. 엄지 손가락 위치도 다르고 세세한 부분이 서로 다르지요. 하지만 깍지를 끼고 두 손을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손과도 깍지를 낄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 양 손만큼 잘 맞아 들어가는 손은 없습니다. 그리고 내 왼손에 상처가 났을 때에 오른손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걔가 아픈 거랑 나랑 뭔 상관이예요? 얼른 저에게 반지 끼워 주세요.'라고 하나요? 아닙니다. 조금만 손을 베어도 다른쪽 손은 그 손을 감싸쥐고 함께 아파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건 바로 두 손이 같은 머리와 심장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핏줄과 신경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그래서 둘은 떨어져 있지만 같은 몸입니다.
부부는 바로 이 양손과 같아야 합니다. 비록 떨어져 있지만 '하느님으로' 연결된 한 몸인 셈이지요. 그래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톨릭적인 부부인 셈이지요. 오늘날 많은 부부들이 서로간의 폭력에 시달립니다.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아내는 남편을 험담하지요. 이런 부부들은 한 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마구 때리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손이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을 때에 나머지 손이 그 손을 위해서 더 열심히 움직이지요.
한 몸인 두 손이 떨어지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곧 몸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고 '죽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두 손이 갈라지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 뿐입니다. 죽음 외에는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군더더기로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한 손이 심하게 아프다면 심한 경우에 팔을 잘라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몸과 심장에 연결된 나머지 팔은 살겠지요. 하지만 잘려진 팔은 복구되지 않으며 그 팔은 심장에서 떨어졌기에 괴사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왜 교회에서 설령 이혼을 했다고 해도 재혼할 수가 없는지가 이해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탓으로 이혼을 주도한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는지도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괴사'하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갈라진 이와 그의 사정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혼인하려는 이 역시 온전하다고 하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혼인장애'가 생기는 것이지요.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하느님?
2일차 성숙한 관계
관계란 무엇인가?
종속적 관계, 성숙한 관계?
관계
사물과의 관계
우리는 물건들과도 관계를 맺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소유하고 그것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일을 다 했을 때에는 그것들을 내버려두지요. 그저 다만 내 최소한의 책임을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물건과 맺는 관계입니다.
동물과의 관계
동물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동물들을 만나지만 그 가운데에는 특별한 만남을 이루어 집에서 나의 책임 하에 돌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동물을 돌볼 책임을 지고 그 동물은 나에게 복종합니다.
인간과의 관계
나아가 우리는 서로간에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상호적인 관계이어야 합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나아가 그도 나를 사랑하는 관계가 바로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입니다. 물론 앞서의 관계의 장점을 다 수용합니다. 나는 그를 책임져야 하고 돌보아야 하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통해 이해를 추구하고 보다 심도깊은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유하려는 인간
제 필요할 때에만 누구를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가 끝나고 나면 가차없이 던져 버리는 이들이 있지요. 바로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인간입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늘 사물과만 관계를 맺어온 탓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들은 형제도 자매도 심지어는 부모도 마찬가지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때로 나타나는 현상이 나이든 부모를 돌보기는 커녕 내다버리는 것이지요.
복종 시키려는 인간
타인을 '동물'로 생각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들은 타인을 '폭력'으로 억압하려고 하지요. 동물에게조차도 때로는 이해와 사랑이 필요할진데 이들은 타인을 동물보다도 못하게 다룹니다. 이들은 누르고 억압해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힘이 상대보다 못하게 될 때에 고스란히 모든 걸 되돌려 받으면서 후회를 하지요.
성숙한 인간
우리는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합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니고 상대를 복종 시키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이지요. 나아가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어둠의 길을 걸을 때에 충고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마약에 빠져들어가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감싸 안아주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지요. 상대가 도둑질을 해서 나에게 선물을 사 주려고 하는데 그걸 그냥 좋다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은 '의로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의 더 높은 '관계'를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인간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지요. 그저 인간끼리만 사랑을 하면 앞서의 이기적인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인간 관계도 하느님과의 관계만큼 진솔하고 영속적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하고 최고로 두어야 비로소 그 다음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3일차 남녀의 성
성의 본질적인 의미
교회 성윤리
성(性)
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남성과 여성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하느님은 이 차별 아닌 차이를 두고 어떠한 역할을 바라셨을까요?
교회는 인간의 성적 차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YOUCAT 400항
인간은 성적 존재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심으로써, 그들이 서로 위하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성적 욕구와 쾌감을 느끼는 능력을 주셨고, 그로써 생명을 계속 전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교회는 남녀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고 가르칩니다.
YOUCAT 401항
성적 우위가 실제로 존재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똑같이 선물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창조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도록 둘의 역할을 나누어 두신 것입니다. 문제는 이 '다름'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다름을 다루어 온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배층은 언제나 육체적으로 우위를 선점해 온 '남성'이 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역사는 남자들의 일을 위주로 쓰여지고 온갖 주요 직책은 남성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성은 음지로 밀려나게 되었지요. 오늘날의 페미니즘과 같은 반발은 역사속에서 고질적으로 이루어진 병폐에 반해서 일어나는 움직임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전적으로 옳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때로는 차이마저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그 존엄성에서는 동일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징'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나지요. 아이를 잉태할 자궁과 그 아이를 키울 젓가슴은 여성의 몫이고 가족을 먹여살릴 힘을 간직한 근육질의 몸은 남성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여성의 천부적인 부드러움은 남성이 따라갈 수 없으며 남성의 천부적인 강인함도 쉽게 바뀌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핵심은 '사랑'입니다. 서로 돕고 채우고 돌보아 주어야 남성과 여성은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동정 마리아, 즉 여성의 동의가 없었더라면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이 사랑을 잊은 세상의 그 어떤 움직임도 정당화 될 수 없고 곧잘 옆길로 엇나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날 여성들이 권익을 회복한다고 해도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운동은 그들을 장님으로 만들어 그릇된 길을 걷게 할 것이고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도 '사랑'이 없다면 곧잘 스스로를 멸망으로 이끄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성폭행, 구타, 폭언과 같은 모든 일들은 바로 이 '사랑'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즉 '차별'을 고려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차별'을 살피고 개선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로지 살벌한 전쟁터만이 남게 될 뿐입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남자와 여자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게 될 것입니다.
4일차 혼배성사
성사란 무엇인가?
혼배성사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혼인성사
성사 -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게 드러내는 것
혼인성사 - 신랑과 신부가 하느님 앞에 하나 될 것을 서약하는 것
세가지 요소
1) 자유 의지에 의한 결혼 동의
2) 평생 독점적인 관계에 대한 동의
3) 출산 용의
3 elementos
1) El consentimiento expresado en libertad
2) La aceptación de una unión exclusiva y para toda la vida
3) La apertura a los hijos.
*Matrimonio Cristiano es la conciencia de la pareja de ser una imagen viva del amor entre Cristo y su Iglesia.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Unidad y Indisolubilidad
그리스도교의 혼인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것에 바탕을 둡니다. 간단히 말해서 양자가 서로 지치더라도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계약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서로에게 충실한다는 개념이지요.
살다보면 지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아무리 실망하더라도 그 상대 배우자를 죽기 직전까지 믿어주는 하느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슬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혼인 전에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다잡고 하느님 앞에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혼인의 분명한 특징입니다.
혼인
혼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제가 즐겨 쓰는 비유는 '몸'에 관한 것입니다. 강론때면 늘 양손을 앞으로 내어놓고 이런 설명을 시작합니다.
"보세요. 여기 두 손이 있죠? 서로 모양이 다릅니다. 엄지 손가락 위치도 다르고 세세한 부분이 서로 다르지요. 하지만 깍지를 끼고 두 손을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손과도 깍지를 낄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 양 손만큼 잘 맞아 들어가는 손은 없습니다. 그리고 내 왼손에 상처가 났을 때에 오른손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걔가 아픈 거랑 나랑 뭔 상관이예요? 얼른 저에게 반지 끼워 주세요.'라고 하나요? 아닙니다. 조금만 손을 베어도 다른쪽 손은 그 손을 감싸쥐고 함께 아파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건 바로 두 손이 같은 머리와 심장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핏줄과 신경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그래서 둘은 떨어져 있지만 같은 몸입니다.
부부는 바로 이 양손과 같아야 합니다. 비록 떨어져 있지만 '하느님으로' 연결된 한 몸인 셈이지요. 그래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톨릭적인 부부인 셈이지요. 오늘날 많은 부부들이 서로간의 폭력에 시달립니다.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아내는 남편을 험담하지요. 이런 부부들은 한 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마구 때리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손이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을 때에 나머지 손이 그 손을 위해서 더 열심히 움직이지요.
한 몸인 두 손이 떨어지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곧 몸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고 '죽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두 손이 갈라지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 뿐입니다. 죽음 외에는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군더더기로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한 손이 심하게 아프다면 심한 경우에 팔을 잘라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몸과 심장에 연결된 나머지 팔은 살겠지요. 하지만 잘려진 팔은 복구되지 않으며 그 팔은 심장에서 떨어졌기에 괴사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왜 교회에서 설령 이혼을 했다고 해도 재혼할 수가 없는지가 이해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탓으로 이혼을 주도한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는지도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괴사'하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갈라진 이와 그의 사정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혼인하려는 이 역시 온전하다고 하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혼인장애'가 생기는 것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