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마태 5,17)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완성’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의문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율법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사랑이셨고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셨습니다. 헌데 인간이 그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하느님께서는 ‘선’을 그으신 것이지요. 적어도 이 선들만은 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0계명이지요. 그리고 유다인들이 지니고 있는 수백가지의 율법들입니다.
보다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상황입니다. 양들이 목동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를 때에는 굳이 울타리 따위는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양들 가운데에 호기심이 많고 목동의 명에 따르지 않는 양들이 생겨나곤 하지요. 그럴 때에 ‘울타리’의 필요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울타리는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양들을 막고 밖에서 들어오는 이리들을 막는 것이지요. 결국 울타리는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울타리의 가장 근본 목적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엇나간 양들이 결국 다시 목동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요. 울타리 자체는 궁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것이 궁극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벗어나고 죄를 찾는 이들이 있으니 율법은 그것을 견제하는 것이지요.
다시 양들의 비유로 돌아가 봅시다. 때로 양들은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그렇다면 목동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그저 울타리 안에 머물러서 남은 양들을 보살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목동은 울타리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밖으로 나간 양들을 찾고 보살피기 위해서 목동은 과감히 울타리를 뛰어 넘기도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한 이유이며, 제자들이 굶주릴 때에 이삭을 뜯어 먹게 하기도 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치신 분이시니 필요하다면 울타리를 뛰어 넘을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이지 울타리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지요.
금요일에 병약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고기를 좀 구워 드렸습니다. 성사를 보아야 하나요? 병이 나서 주일미사를 걸렀습니다. 성사를 보아야 하나요? 이런 질문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율법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과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두 사람입니다. 분명히 지켜야 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하는 사람과 보다 더 큰 사랑을 위해서 율법의 틀을 뛰어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모습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율법을 과감하게 무시하면서 마치 자신이 율법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경거망동하는 사람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율법의 근본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어서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부족하거나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 역시도 진정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완성’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의문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율법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사랑이셨고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셨습니다. 헌데 인간이 그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하느님께서는 ‘선’을 그으신 것이지요. 적어도 이 선들만은 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0계명이지요. 그리고 유다인들이 지니고 있는 수백가지의 율법들입니다.
보다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상황입니다. 양들이 목동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를 때에는 굳이 울타리 따위는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양들 가운데에 호기심이 많고 목동의 명에 따르지 않는 양들이 생겨나곤 하지요. 그럴 때에 ‘울타리’의 필요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울타리는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양들을 막고 밖에서 들어오는 이리들을 막는 것이지요. 결국 울타리는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울타리의 가장 근본 목적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엇나간 양들이 결국 다시 목동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요. 울타리 자체는 궁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것이 궁극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벗어나고 죄를 찾는 이들이 있으니 율법은 그것을 견제하는 것이지요.
다시 양들의 비유로 돌아가 봅시다. 때로 양들은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그렇다면 목동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그저 울타리 안에 머물러서 남은 양들을 보살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목동은 울타리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밖으로 나간 양들을 찾고 보살피기 위해서 목동은 과감히 울타리를 뛰어 넘기도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한 이유이며, 제자들이 굶주릴 때에 이삭을 뜯어 먹게 하기도 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치신 분이시니 필요하다면 울타리를 뛰어 넘을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이지 울타리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지요.
금요일에 병약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고기를 좀 구워 드렸습니다. 성사를 보아야 하나요? 병이 나서 주일미사를 걸렀습니다. 성사를 보아야 하나요? 이런 질문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율법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과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두 사람입니다. 분명히 지켜야 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하는 사람과 보다 더 큰 사랑을 위해서 율법의 틀을 뛰어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모습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율법을 과감하게 무시하면서 마치 자신이 율법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경거망동하는 사람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율법의 근본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어서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부족하거나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 역시도 진정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