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에페 3,18-19)
사람은 거대한 것을 보면 절로 감탄을 하게 됩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의 광활함을 보고 감동받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수 백, 수 천 년을 이어오는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대자연의 신비는 어디까지나 ‘지상의 사정’입니다. 영적으로도 ‘어마어마한 것’이 존재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고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존재를 합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요. 흔히들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실제 그의 심장 크기가 커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가 수용하는 품이 넓어서 그런 말을 합니다. 또 생각이 깊다는 말도 합니다. 그의 뇌가 깊이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것이 몇 단계 더 깊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에도 그러한 품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깊이 잠겨든다 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컵으로 바닷물을 모두 담을 수는 없듯이 우리의 지각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느님의 어마어마한 사랑을 모두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퍼와도 언제나 철철 넘쳐흐르는 사랑의 근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사랑을 청하면 그분은 언제라도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안에 살아가면서도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구 위에서 살아가지만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식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아가 우리 태양계 자체도 회전하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아예 알지도 못하고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숨쉬고 살아가는데도 그것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나아가서 아예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지만 거기에서 사랑을 느끼기는 커녕, ‘구원자의 무기력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초라한 사랑을 즐기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만끽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신 그분의 사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거대한 것을 보면 절로 감탄을 하게 됩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의 광활함을 보고 감동받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수 백, 수 천 년을 이어오는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대자연의 신비는 어디까지나 ‘지상의 사정’입니다. 영적으로도 ‘어마어마한 것’이 존재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고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존재를 합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요. 흔히들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실제 그의 심장 크기가 커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가 수용하는 품이 넓어서 그런 말을 합니다. 또 생각이 깊다는 말도 합니다. 그의 뇌가 깊이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것이 몇 단계 더 깊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에도 그러한 품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깊이 잠겨든다 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컵으로 바닷물을 모두 담을 수는 없듯이 우리의 지각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느님의 어마어마한 사랑을 모두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퍼와도 언제나 철철 넘쳐흐르는 사랑의 근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사랑을 청하면 그분은 언제라도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안에 살아가면서도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구 위에서 살아가지만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식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아가 우리 태양계 자체도 회전하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아예 알지도 못하고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숨쉬고 살아가는데도 그것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나아가서 아예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지만 거기에서 사랑을 느끼기는 커녕, ‘구원자의 무기력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초라한 사랑을 즐기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만끽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신 그분의 사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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