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은 살아있는 동안 육신을 벗어날 수 없고, 우리는 우주 조종사가 되지 않는 이상 지구를 떠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일종의 ‘갇혀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상이라는 능력을 통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고, 나아가 우주를 넘어서 그 밖의 초월적인 것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고 우리는 벗어났다고 생각한 만큼 다시 이전의 닫히고 갇힌 생활을 하게 된다. 마치 목이 마른데 탄산음료를 마신 것처럼 일시적인 목마름은 가시지만 그 이후에는 더한 목마름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참된 해방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진정한 영원이신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를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고 갈망할 때에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꺼내주신다. 우리의 영혼이 진정한 해방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그 자유를 얻은 영혼은 자신의 갇힌 생활을 더이상 불평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지금의 구속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앞으로의 완전함을 만끽할 수 있는 준비과정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 선택으로 더한 구속의 삶을 추구하는 만큼, 훗날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지상의 삶에서의 자유의 추구는 간혹 ‘방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가 쉽고 우리는 곧잘 길을 엇나가게 된다. 우리는 영원에로의 추구를 통해서만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영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를 자신 앞에 내어놓기를 바란다. 영원한 자유를 위해서 지금의 일시적 자유를 스스로 봉헌하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비로소 신앙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참된 해방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진정한 영원이신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를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고 갈망할 때에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꺼내주신다. 우리의 영혼이 진정한 해방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그 자유를 얻은 영혼은 자신의 갇힌 생활을 더이상 불평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지금의 구속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앞으로의 완전함을 만끽할 수 있는 준비과정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 선택으로 더한 구속의 삶을 추구하는 만큼, 훗날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지상의 삶에서의 자유의 추구는 간혹 ‘방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가 쉽고 우리는 곧잘 길을 엇나가게 된다. 우리는 영원에로의 추구를 통해서만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영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를 자신 앞에 내어놓기를 바란다. 영원한 자유를 위해서 지금의 일시적 자유를 스스로 봉헌하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비로소 신앙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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