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은 내어줌을 필요로 합니다. 부족함이 없으면 내어줄 필요도 없지요.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는 이유는 서로 내어주고 살라는 하느님의 뜻인 셈입니다. 모두가 완전하다면 내어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다른 존재를 통해서 채워짐을 갈구하지요. 하지만 이 채움을 전혀 달리 해석해서 ‘소유’를 통해서 채우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즉 대장장이와 목수가 있으면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고 도우면 되는데 대장장이가 욕심이 나서 목수를 ‘소유’하려고 들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물들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는 가지고 나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서 빌려다 쓰는 것은 거추장스럽기 때문입니다. 행여라도 빌려주지 않게 되면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단은 소유해 놓고 원할 때 언제라도 쓰려고 합니다.
심지어 이런 소유는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하곤 합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라 친구를 ‘소유’하려고 들지요. 아주 어릴 때에 멋들어진 장난감을 보여 주면서 ‘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으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라 친구를 소유하려는 아이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양상은 바뀌지만 근본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나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 똑똑함을 누리고 싶으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 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이 미모를 누리고 싶으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 심지어는 ‘선함’ 마저도 이런 식으로 이용되지요. 즉, 나는 가장 선한(척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나의 선함을 누리려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
이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이건 지독히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너는 네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하지만 우리 부족함을 서로 메꾸면서 살아가자.’라는 구도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고유한 사람들이며 반드시 각자에게는 부족함이 존재하고 또 반대로 남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부족함은 소유를 통해서 완전함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 부족함이 있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다른 존재를 통해서 채워짐을 갈구하지요. 하지만 이 채움을 전혀 달리 해석해서 ‘소유’를 통해서 채우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즉 대장장이와 목수가 있으면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고 도우면 되는데 대장장이가 욕심이 나서 목수를 ‘소유’하려고 들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물들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는 가지고 나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서 빌려다 쓰는 것은 거추장스럽기 때문입니다. 행여라도 빌려주지 않게 되면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단은 소유해 놓고 원할 때 언제라도 쓰려고 합니다.
심지어 이런 소유는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하곤 합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라 친구를 ‘소유’하려고 들지요. 아주 어릴 때에 멋들어진 장난감을 보여 주면서 ‘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으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라 친구를 소유하려는 아이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양상은 바뀌지만 근본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나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 똑똑함을 누리고 싶으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 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이 미모를 누리고 싶으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 심지어는 ‘선함’ 마저도 이런 식으로 이용되지요. 즉, 나는 가장 선한(척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나의 선함을 누리려면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해.
이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이건 지독히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너는 네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하지만 우리 부족함을 서로 메꾸면서 살아가자.’라는 구도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고유한 사람들이며 반드시 각자에게는 부족함이 존재하고 또 반대로 남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부족함은 소유를 통해서 완전함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 부족함이 있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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