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교리 교사 한 명은 페인트 칠하는 일을 합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전해준 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페인트칠은 단순히 페인트를 벽에 바르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작은 구멍들을 메꾸고 울퉁불퉁한 면을 고르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지 않고 페인트를 바르기 시작하면 페인트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이 든다는 것입니다. 행여라도 그 구멍 너머에 엄청난 공간이 있다면 페인트를 다 쏟아부어도 모자란 셈이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우리 영혼의 작업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지요.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작업이 존재해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것을 쏟아 부어 보아야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공허를 메꾸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 근본 안에 있는 욕구를 살피고 그 욕구의 근원과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혼 안에 커다란 구멍을 갖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재료들을 안에 쏟아부어봐야 다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지요.
고해성사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생각보다 깊은 치유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고해가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에 말이지요. 사실 많은 이들이 매 미사 때마다 고해성사에 다가오지만 진정한 치유의 체험을 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대다수는 양심 불끄기 용이지요. 그러니 영혼의 근본적인 공허가 메꾸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근본적인 작업을 해 두었더라면 그 이후에 다가오는 모든 것은 영혼을 꾸미고 가꾸는 재료로 쓰이게 됩니다. 모든 주제의 모든 책을 읽더라도 그것이 도움이 되지요.
페인트칠은 단순히 페인트를 벽에 바르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작은 구멍들을 메꾸고 울퉁불퉁한 면을 고르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지 않고 페인트를 바르기 시작하면 페인트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이 든다는 것입니다. 행여라도 그 구멍 너머에 엄청난 공간이 있다면 페인트를 다 쏟아부어도 모자란 셈이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우리 영혼의 작업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지요.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작업이 존재해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것을 쏟아 부어 보아야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공허를 메꾸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 근본 안에 있는 욕구를 살피고 그 욕구의 근원과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혼 안에 커다란 구멍을 갖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재료들을 안에 쏟아부어봐야 다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지요.
고해성사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생각보다 깊은 치유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고해가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에 말이지요. 사실 많은 이들이 매 미사 때마다 고해성사에 다가오지만 진정한 치유의 체험을 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대다수는 양심 불끄기 용이지요. 그러니 영혼의 근본적인 공허가 메꾸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근본적인 작업을 해 두었더라면 그 이후에 다가오는 모든 것은 영혼을 꾸미고 가꾸는 재료로 쓰이게 됩니다. 모든 주제의 모든 책을 읽더라도 그것이 도움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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