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다시 혼배강좌를 시작했습니다. 4일간 15쌍의 부부들과 열심히 수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첫날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바로 ‘하느님과 나’이지요. 그리고 사실 이것이 전부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이 관계가 올바로 서면 나머지 것들을 모두 잘 이끌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관계가 무너지고 나면 아무리 나머지 것들을 신경쓴다 하더라도 공연한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음의 정도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하느님에 대한 인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은 너무나 세속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저의 첫 시도는 이 ‘신앙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출발점은 그들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원치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니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아무리 좋은 황금 젓가락이 있어도 젓가락 자체에 대한 존재감이 없는 남미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시도는 그들의 현실을 밝혀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지금은 어떤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행복해하고 싶어하는데 실제로 그런가를 자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행복해하고 싶어하지만 문제는 그닥 행복하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그들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 기초를 닦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의 실체를 드러내어주고 그러한 부와 명예와 권력에 대한 추구가 생각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두 번째 파트로 들어가는 셈이지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요.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보이는 것이야 설명하고 드러내어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이 역시 우리 자신 안에서 그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도 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찾는 행복 자체가 실은 형체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소유하면 행복해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소유물 자체가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소유하는 행위’가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유하고 난 뒤에 다시 지겨워지만 그 행복도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전히 소유물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로 느끼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세번째 파트,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짧은 부분이 제시됩니다.
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없다고 간주하고 살아갈 것인가?
바로 우리의 선택이지요. 그리고 이 이후로는 모인 사람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인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과정들을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상당수가 이 지적인 진행과정에는 동참하고 수긍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다시 삶으로 돌아가면 하느님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실제 그러합니다. 이들은 혼배를 위해서 강좌를 들을 뿐, 성당에 꾸준히 나와서 하느님을 찾아가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이는 혼배가 끝나고 나서 혼배자들의 주일미사 참여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저마다 살기 바쁜 것이지요. 네, 참 살기 바쁜 세상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바쁜지는 저마다의 양심으로 대답해야 하겠지요. 만일 정말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있어서 주일마저도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하느님도 기꺼이 용서하실 일이니까요.
첫날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바로 ‘하느님과 나’이지요. 그리고 사실 이것이 전부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이 관계가 올바로 서면 나머지 것들을 모두 잘 이끌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관계가 무너지고 나면 아무리 나머지 것들을 신경쓴다 하더라도 공연한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음의 정도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하느님에 대한 인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은 너무나 세속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저의 첫 시도는 이 ‘신앙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출발점은 그들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원치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니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아무리 좋은 황금 젓가락이 있어도 젓가락 자체에 대한 존재감이 없는 남미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시도는 그들의 현실을 밝혀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지금은 어떤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행복해하고 싶어하는데 실제로 그런가를 자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행복해하고 싶어하지만 문제는 그닥 행복하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그들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 기초를 닦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의 실체를 드러내어주고 그러한 부와 명예와 권력에 대한 추구가 생각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두 번째 파트로 들어가는 셈이지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요.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보이는 것이야 설명하고 드러내어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이 역시 우리 자신 안에서 그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도 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찾는 행복 자체가 실은 형체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소유하면 행복해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소유물 자체가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소유하는 행위’가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유하고 난 뒤에 다시 지겨워지만 그 행복도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전히 소유물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로 느끼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세번째 파트,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짧은 부분이 제시됩니다.
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없다고 간주하고 살아갈 것인가?
바로 우리의 선택이지요. 그리고 이 이후로는 모인 사람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인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과정들을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상당수가 이 지적인 진행과정에는 동참하고 수긍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다시 삶으로 돌아가면 하느님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실제 그러합니다. 이들은 혼배를 위해서 강좌를 들을 뿐, 성당에 꾸준히 나와서 하느님을 찾아가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이는 혼배가 끝나고 나서 혼배자들의 주일미사 참여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저마다 살기 바쁜 것이지요. 네, 참 살기 바쁜 세상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바쁜지는 저마다의 양심으로 대답해야 하겠지요. 만일 정말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있어서 주일마저도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하느님도 기꺼이 용서하실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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