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습니다. 그것은 필요한 행동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이지요. 하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 포크를 쓰느냐 젓가락을 쓰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린 행동입니다. 정말 배가 고픈 사람을 두고 젓가락을 쓰지 못한다고 밥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심지어 젓가락이나 포크가 없어도 사람은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마련인 것이지요.
그럼 과연 우리는 가장 필요한 것만 하면서 짐승처럼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요?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 나뭇잎으로 뒤를 닦으면서 살면 되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문화적인 면을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문화적인 부분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행위가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을 훼손하기 시작하면 거기에서부터 허례 허식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예를 들어, 한 꼬마 아이가 밥상에 앉아 있습니다. 부모님으로서는 그 아이가 젓가락을 쓰게 만들고 싶겠지요. 그렇다면 사랑과 애정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아이에게 젓가락을 쓰는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배워 나가게 사랑과 애정으로 도와 주면 훗날 아이는 젓가락을 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무디어서 이제 겨우 젓가락 쥐는 방법을 터득한 아이에게 부모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배우지 못한다고 마구 화를 내고 밥을 굶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부모의 허례허식에서 나오는 엉뚱한 결과일 뿐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저마다의 생각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성당은 그야말로 쥐죽은 듯이 고요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적인 특성에서 고착된 결과에 불과합니다. 제가 남미에서 드리는 미사는 갓난 아이가 울고 주변의 소음이 끊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만일 우리 동네 사람들을 한국과 같은 성당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 밀려드는 적막감에 도리어 더 분심이 들지도 모를 일입니다.
거기에 미사의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모든 필요한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사제는 전례 봉사자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이 일부러 뭔가를 빠뜨릴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뭔가가 부족해도 조용하게 복사를 불러 가져 오라고 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내면 안에 ‘완벽함’이 깃들어버린 사제는 뭔가 하나만 부족해도 당장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는 셈입니다. 이는 바로 그 하나의 부족함을 위해서 도리어 전례 전체를 망치는 결과인 셈이지요. 복사들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느 예식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실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은 늘 존재하는 것이지요. 다만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지 그때마다 버럭 화를 내어 버린다면 우리는 미사의 보다 본질적인 면을 훼손하는 꼴이 됩니다.
허례 허식이라는 것은 본질은 망각하고 그 행위 자체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우리가 하는 행위들은 그 행위의 본질적인 면이 고려된 것인지 아니면 그 행위 자체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삶의 중심에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사명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가장 필요한 것만 하면서 짐승처럼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요?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 나뭇잎으로 뒤를 닦으면서 살면 되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문화적인 면을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문화적인 부분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행위가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을 훼손하기 시작하면 거기에서부터 허례 허식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예를 들어, 한 꼬마 아이가 밥상에 앉아 있습니다. 부모님으로서는 그 아이가 젓가락을 쓰게 만들고 싶겠지요. 그렇다면 사랑과 애정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아이에게 젓가락을 쓰는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배워 나가게 사랑과 애정으로 도와 주면 훗날 아이는 젓가락을 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무디어서 이제 겨우 젓가락 쥐는 방법을 터득한 아이에게 부모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배우지 못한다고 마구 화를 내고 밥을 굶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부모의 허례허식에서 나오는 엉뚱한 결과일 뿐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저마다의 생각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성당은 그야말로 쥐죽은 듯이 고요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적인 특성에서 고착된 결과에 불과합니다. 제가 남미에서 드리는 미사는 갓난 아이가 울고 주변의 소음이 끊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만일 우리 동네 사람들을 한국과 같은 성당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 밀려드는 적막감에 도리어 더 분심이 들지도 모를 일입니다.
거기에 미사의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모든 필요한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사제는 전례 봉사자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이 일부러 뭔가를 빠뜨릴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뭔가가 부족해도 조용하게 복사를 불러 가져 오라고 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내면 안에 ‘완벽함’이 깃들어버린 사제는 뭔가 하나만 부족해도 당장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는 셈입니다. 이는 바로 그 하나의 부족함을 위해서 도리어 전례 전체를 망치는 결과인 셈이지요. 복사들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느 예식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실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은 늘 존재하는 것이지요. 다만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지 그때마다 버럭 화를 내어 버린다면 우리는 미사의 보다 본질적인 면을 훼손하는 꼴이 됩니다.
허례 허식이라는 것은 본질은 망각하고 그 행위 자체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우리가 하는 행위들은 그 행위의 본질적인 면이 고려된 것인지 아니면 그 행위 자체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삶의 중심에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사명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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