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고 난 뒤에 탈취하는 돈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집단 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즉 무력을 행사해서 상대가 가진 것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하지요.
돈을 버는 데에는 여러가지 정당한 수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정당하지 못한 돈벌이가 있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힘을 내세워 억지로 빼앗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월급을 받아갑니다. 하지만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이들도 있습니다. 돈이 돈을 벌어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돈이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습니다. 돈은 마련된 제도에 의해서 굴러가게 마련이지요.
가난한 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제도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부자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가난한 이들은 가진 것마저 빼앗는 제도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유치원생에게 물어보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언뜻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이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노예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느 지방 학생이 아무런 과외도 없이 순전히 교과서만 공부해서 서울에 갈 수 있을 가능성은 하늘에서 바늘이 떨어져서 땅에 있는 바늘과 맞부딪히는 수준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벌어들인 것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권리들이 올바르게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홍길동처럼 부자에게 쳐들어가서 가진 것들을 몽땅 빼앗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면 상황이 종료되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렇게 탈취한 재물을 보고 욕심이 생겨 다시 새로운 부자들만이 형성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해방은 외적 물질의 소유권에 있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내면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부자이어도 넉넉한 사람이 있고, 가난해도 구두쇠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적 상태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한 법이지요.
아마 종말까지 이 사태는 거의 뒤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부자들은 득세하고 더더욱 자신들의 틀을 형성해가고 부를 끌어 모으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부자들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꿈꾸고 허덕이다가 죽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외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할 게 아니라 생활을 충실하게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부에 대한 욕구와 상응하는 내면의 가치에 대한 욕구를 키우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보다 진실한 세상의 면모를 바라보게 되고 덜 욕심내고,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데에는 여러가지 정당한 수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정당하지 못한 돈벌이가 있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힘을 내세워 억지로 빼앗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월급을 받아갑니다. 하지만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이들도 있습니다. 돈이 돈을 벌어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돈이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습니다. 돈은 마련된 제도에 의해서 굴러가게 마련이지요.
가난한 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제도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부자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가난한 이들은 가진 것마저 빼앗는 제도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유치원생에게 물어보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언뜻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이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노예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느 지방 학생이 아무런 과외도 없이 순전히 교과서만 공부해서 서울에 갈 수 있을 가능성은 하늘에서 바늘이 떨어져서 땅에 있는 바늘과 맞부딪히는 수준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벌어들인 것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권리들이 올바르게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홍길동처럼 부자에게 쳐들어가서 가진 것들을 몽땅 빼앗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면 상황이 종료되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렇게 탈취한 재물을 보고 욕심이 생겨 다시 새로운 부자들만이 형성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해방은 외적 물질의 소유권에 있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내면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부자이어도 넉넉한 사람이 있고, 가난해도 구두쇠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적 상태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한 법이지요.
아마 종말까지 이 사태는 거의 뒤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부자들은 득세하고 더더욱 자신들의 틀을 형성해가고 부를 끌어 모으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부자들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꿈꾸고 허덕이다가 죽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외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할 게 아니라 생활을 충실하게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부에 대한 욕구와 상응하는 내면의 가치에 대한 욕구를 키우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보다 진실한 세상의 면모를 바라보게 되고 덜 욕심내고,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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