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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따른 행위이냐 복음을 듣고 믿음이냐?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은총을 얻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 행동양식입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은 우리 안에 아주 단단히 박혀 있어서 우리는 적지 않은 수많은 행위를 같은 바탕으로 시작합니다. 즉,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이지요.

만원을 주면 만원어치의 물건을 사고, 10만원을 주면 10만원 어치의 물건을 사듯이 교회 안에서도 같은 흥정이 이루어집니다. 묵주기도 한 단을 바치면 묵주기도 한 단 어치의 은총을 받고, 묵주기도를 9일 기도로 해서 54일을 바치고 나면 그만큼의 은총을 받아낸다는 계산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계산법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끝나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포도주가 맛이 좋다면서 그것을 마시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미 새 포도주를 받았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법입니다.

자, 이제 새로운 가르침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더할나위없는 은총, 우리가 아무리 갚을래야 되갚을 수가 없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돈으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일순간 삼성의 후계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재산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게 된 셈이지요.

이러한 은총은 우리가 계산하고 따질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죽자고 평생을 일해도 정당한 수단으로는 그런 돈을 벌 방법이 없지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최대한 잠을 줄이고 단식을 하고 기도를 하루에 종류별로 다 바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권리를 오직 ‘신앙’으로만 얻은 셈이지요. 예수님은 주님이시라는 고백과 그 실제적인 믿음을 통해서 그 자격을 얻는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저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한다고 얻어지는 믿음은 아니지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즈음에서 많은 분들이 혼란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지금은 다시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를 통해서 은총을 얻겠다는 생각은 삼가해야 하지만,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께 다가가도록 최대한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진 하느님의 자녀됨의 자격은 우리의 선택으로 내쳐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입양된 자녀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해도 그 자녀가 자라서 모든 게 싫다고 떠나버리면 도리가 없는 셈입니다.

우리는 은총을 살 수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선물받은 은총을 우리는 잘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 되었으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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