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척 그런 듯 하는 것. 위선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생겨납니다. 실제로는 착하지 않은 데 착한 척 한다거나 실제로는 다정하지 않지만 주변을 의식해서 다정한 척 하는 것이지요.
본당의 어느 사목회장님이 본당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인이지만 집에 돌아만 가면 폭군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위선이지요. 속에는 시커먼 것을 숨겨 두고 겉으로는 온갖 가식적인 행위를 드러나게 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남을 속이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속사정은 통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게 마련이고 하느님은 일찍부터 그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잠자코 계실 뿐입니다.
위선이라는 것은 근본 의도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들에겐 위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것은 좋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하며 실컷 싸웠다가 금새 화해하곤 합니다. 위선은 주로 어른들의 몫이지요.
위선은 자기 아닌 자기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누구나 똑같지만 부자가 되면서 ‘부자인 자기’를 형성해 가기 시작하는 거지요. 예컨대 부자는 가난한 이와 어울리면 안된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부자는 지저분한 그릇에 먹으면 안된다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위선이지요. 그러다가 어디에 여행을 가서 어쩌다보니 지갑을 잃어버리고 정말 배는 고픈데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먹는 지저분한 음식 밖에 없을 때에 이 사람은 자신의 위선의 가면이 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배고플 때에 음식을 먹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위선적인 면모들을 많이 키워 놓았습니다. 특히나 사람들의 평판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 복잡 미묘한 위선 속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지요. 심지어는 스스로 착하다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위선의 가면을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막상 실제로 일이 일어나 보면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요. 본인이 그다지 착하지는 않다는 걸 말이지요.
화려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난한 이들의 삶에 눈물을 훔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옆에 앉아서 좋아하는 케익을 나누어 먹자고 떼를 쓰는 동생에게는 눈을 흘기지요. 스마트폰으로 온갖 궁상맞은 가난한 이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우리 함께 ‘좋아요’로 동참하자고 하고서는 정작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껏 내던집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착하지 않습니다.
본당의 어느 사목회장님이 본당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인이지만 집에 돌아만 가면 폭군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위선이지요. 속에는 시커먼 것을 숨겨 두고 겉으로는 온갖 가식적인 행위를 드러나게 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남을 속이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속사정은 통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게 마련이고 하느님은 일찍부터 그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잠자코 계실 뿐입니다.
위선이라는 것은 근본 의도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들에겐 위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것은 좋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하며 실컷 싸웠다가 금새 화해하곤 합니다. 위선은 주로 어른들의 몫이지요.
위선은 자기 아닌 자기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누구나 똑같지만 부자가 되면서 ‘부자인 자기’를 형성해 가기 시작하는 거지요. 예컨대 부자는 가난한 이와 어울리면 안된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부자는 지저분한 그릇에 먹으면 안된다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위선이지요. 그러다가 어디에 여행을 가서 어쩌다보니 지갑을 잃어버리고 정말 배는 고픈데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먹는 지저분한 음식 밖에 없을 때에 이 사람은 자신의 위선의 가면이 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배고플 때에 음식을 먹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위선적인 면모들을 많이 키워 놓았습니다. 특히나 사람들의 평판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 복잡 미묘한 위선 속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지요. 심지어는 스스로 착하다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위선의 가면을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막상 실제로 일이 일어나 보면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요. 본인이 그다지 착하지는 않다는 걸 말이지요.
화려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난한 이들의 삶에 눈물을 훔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옆에 앉아서 좋아하는 케익을 나누어 먹자고 떼를 쓰는 동생에게는 눈을 흘기지요. 스마트폰으로 온갖 궁상맞은 가난한 이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우리 함께 ‘좋아요’로 동참하자고 하고서는 정작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껏 내던집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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