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생활을 막연히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신앙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숨을 쉬듯이 신앙이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신앙이 없는 상태’를 훈련받아온 셈이지요.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할 신앙생활이 힘겹고 부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살아 왔습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엄청난 자연 현상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를 지니고 살아왔지요.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우리는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보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그 경외를 소홀히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신의 손길에서 인간을 독립 시키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이 생각했지요. 자연의 재료들에 자신의 영리함을 더해 온갖 ‘기술’을 개발시킨 뒤에 스스로를 신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우리 스스로는 하늘에서 치는 그 어떤 번개 하나도 흉내내기 힘들지만 우리는 이미 전기를 다룬다고 자신하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는 여전히 생명 하나도 직접 만들지 못하지만 DNA를 다루면서 마치 모든 생명이 우리 손아귀에 있다는 듯이 자신하는 셈입니다.
신앙은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교육 없이도 그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단다.’라고 가르치면 바로 알아 듣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가르치기도 전에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지요. 즉 ‘너 그러면 하느님이 벌준다!’라는 식의 으름장을 놓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전혀 관심없이 살아가지요. 하느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과 옷과 좋은 교육을 제공하면서 정작 하느님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으니 그 아이는 과연 ‘가치’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있는 걸까요? 참으로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숨쉬듯이, 우리가 숲길을 산책하듯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뒤틀려 있으니 그걸 바로 잡느라고 온 노력을 다 쏟아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셨고 우리를 지켜 보시고 사랑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억지로 그분에게서 멀어져서 생활해 왔으니 그것을 돌이키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이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점수를 따려면 공부를 엄청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행여 잘못한 게 없나 스스로를 살피고, 채찍질하고, 미흡하다 싶은 게 있으면 스스로 좌절하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셈이지요.
우리는 부모님과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의 관계(보통의 케이스 - 왜냐하면 비정상적인 관계도 많기 때문입니다.)를 떠올려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과 같이 머무는 데에 용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시는 밥 먹고,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갔지요. 하느님과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찾아 헤매고 애를 써서 다가갈 분이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가는 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엇나간 길을 회복하느라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셈이지요.
숨쉬듯이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시는 분이시니까요.
인간은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살아 왔습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엄청난 자연 현상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를 지니고 살아왔지요.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우리는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보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그 경외를 소홀히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신의 손길에서 인간을 독립 시키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이 생각했지요. 자연의 재료들에 자신의 영리함을 더해 온갖 ‘기술’을 개발시킨 뒤에 스스로를 신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우리 스스로는 하늘에서 치는 그 어떤 번개 하나도 흉내내기 힘들지만 우리는 이미 전기를 다룬다고 자신하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는 여전히 생명 하나도 직접 만들지 못하지만 DNA를 다루면서 마치 모든 생명이 우리 손아귀에 있다는 듯이 자신하는 셈입니다.
신앙은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교육 없이도 그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단다.’라고 가르치면 바로 알아 듣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가르치기도 전에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지요. 즉 ‘너 그러면 하느님이 벌준다!’라는 식의 으름장을 놓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전혀 관심없이 살아가지요. 하느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과 옷과 좋은 교육을 제공하면서 정작 하느님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으니 그 아이는 과연 ‘가치’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있는 걸까요? 참으로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숨쉬듯이, 우리가 숲길을 산책하듯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뒤틀려 있으니 그걸 바로 잡느라고 온 노력을 다 쏟아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셨고 우리를 지켜 보시고 사랑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억지로 그분에게서 멀어져서 생활해 왔으니 그것을 돌이키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이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점수를 따려면 공부를 엄청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행여 잘못한 게 없나 스스로를 살피고, 채찍질하고, 미흡하다 싶은 게 있으면 스스로 좌절하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셈이지요.
우리는 부모님과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의 관계(보통의 케이스 - 왜냐하면 비정상적인 관계도 많기 때문입니다.)를 떠올려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과 같이 머무는 데에 용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시는 밥 먹고,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갔지요. 하느님과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찾아 헤매고 애를 써서 다가갈 분이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가는 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엇나간 길을 회복하느라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셈이지요.
숨쉬듯이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시는 분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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