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은 예속된 몸입니다. 자유가 없지요. 뭔가 좋은 것을 받거나 칭찬을 받더라도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받을 뿐입니다. 뭔가를 잘 해서 받는 것일 뿐이지요. 그리고 뭔가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습니다.
반면 자녀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받는 좋은 것은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자녀는 뭘 특별히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것을 누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입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은총의 선물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는 것이지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해서 기도의 은총을 받고, 우리가 열심히 무슨 업적을 쌓아서 받는 것은 우리가 종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녀들입니다.
하지만 자녀도 뭔가 미흡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벌을 받기보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자녀의 미흡하고 약함은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녀는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합니다. 하지만 늘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때로 자녀가 부모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서는 때가 있습니다. 즉,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부모로서도 어쩔 수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자녀를 사랑하고 껴안으려고 해도 자녀가 지닌 고유한 자유를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자녀는 때로 스스로 부모를 떠나가버리고 맙니다.
부모를 떠난 자녀는 종의 관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스스로 종살이의 멍에를 다시금 매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자 관계에서 벗어나 주인과 종의 관계로 돌아가 두려움을 지니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뭔가를 잘 하기 위해서 필사적이 되지요.
우리 스스로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의 관계 안에 있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에 대한 공포, 무언가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종살이 신분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요?
반면 자녀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받는 좋은 것은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자녀는 뭘 특별히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것을 누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입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은총의 선물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는 것이지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해서 기도의 은총을 받고, 우리가 열심히 무슨 업적을 쌓아서 받는 것은 우리가 종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녀들입니다.
하지만 자녀도 뭔가 미흡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벌을 받기보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자녀의 미흡하고 약함은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녀는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합니다. 하지만 늘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때로 자녀가 부모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서는 때가 있습니다. 즉,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부모로서도 어쩔 수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자녀를 사랑하고 껴안으려고 해도 자녀가 지닌 고유한 자유를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자녀는 때로 스스로 부모를 떠나가버리고 맙니다.
부모를 떠난 자녀는 종의 관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스스로 종살이의 멍에를 다시금 매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자 관계에서 벗어나 주인과 종의 관계로 돌아가 두려움을 지니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뭔가를 잘 하기 위해서 필사적이 되지요.
우리 스스로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의 관계 안에 있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에 대한 공포, 무언가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종살이 신분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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