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인터넷 상에 ‘성공하는 사람들의…’라고 시작하는 글들은 너나없이 읽어보곤 하지요. 성공이라는 것은 원하던 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진정한 의미이겠지요. 문제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스스로의 삶을 성공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실제로 여러가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뭔가 하나를 성공하나 싶으면 다른 하나가 터져나오고, 그 다른 것을 메꾸려고 들다가 결국에는 병을 얻고… 생은 마감되고 말지요.
과연 성공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일까요? 이 진지한 고민이 없이 막연히 ‘성공’이라는 단어의 매력에 끌려 다니다보면 성공은 커녕 삶을 낭비하고 맙니다.
성공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육신의 안락을 위한 성공이 존재할 수 있고, 정신적 만족을 위한 성공이 존재할 수 있지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적 평화를 얻는 성공을 들 수 있습니다. 육신의 안락이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요구사항(의식주)을 제외하고는 거의 상대적인 것입니다. 10만원짜리 피자를 먹느냐 몇천원짜리 냉동피자를 먹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시골 아이들에게는 이거든 저거든 좋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둘 다 맛있는 음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시골 아이들이 도시에 와서 이것 저것 맛을 보기 시작하다보니 10만원짜리 피자의 질적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될 뿐입니다. 사람은 일단 먹을 거리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상대적인 만족감을 찾는 것입니다.
지적인 만족이라는 것은 이러저러한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 넣게 되면서 누리는 만족감입니다. 여기에는 ‘명예’라는 것도 굉장히 작용을 합니다. 내가 많이 아니까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지요. 유명한 외국 음대를 나와서 바이올린 실력이 출중하면 뛰어난 사람이고 시골 깡촌에서 바이올린을 즐기는 사람은 천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을 미분 적분을 하고 방정식을 구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지요. 그게 없다면 문제가 되지만 장애가 있지 않는 이상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의 소양은 갖추고 살아갑니다.
영적인 성공에 집중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부분을 신경을 쓰고 있을까요? 실제로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만나는 적지 않은 이들은 이 영적 성공에 대해서는 아예 감도 잡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모종의 ‘중독’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중독, 물건을 소비해야 한다는 중독, 술이나 담배에 대한 중독, 성에 대해서도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중독 상태에서 자신이 찾는 그 대상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와야 ‘만족감’을 누리지만 그 만족 상태는 불과 얼마 지속되지 않습니다. 마치 밥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배가 꺼지듯이 이러한 종류의 중독은 그 쾌감이 지속되는 동안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공허감’이 찾아들지요.
영적인 성공은 오직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 ‘신앙 중독’, 또는 ‘종교 중독’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케이스는 아주 심각한 것이 스스로 아주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까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고, 정해진 규정을 일일이 다 완수한다고 마치 온라인 게임의 목표달성을 하듯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정작 자신이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로 스스로를 ‘의인’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참된 영적 성공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그 외아들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지요. 이를 위해서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지적으로 알고 영적 교만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이웃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변의 가장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환상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 중독상태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내면의 충만함이며, 이는 오직 예수님과의 만남, 즉 우리 주변의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뭔가 하나를 성공하나 싶으면 다른 하나가 터져나오고, 그 다른 것을 메꾸려고 들다가 결국에는 병을 얻고… 생은 마감되고 말지요.
과연 성공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일까요? 이 진지한 고민이 없이 막연히 ‘성공’이라는 단어의 매력에 끌려 다니다보면 성공은 커녕 삶을 낭비하고 맙니다.
성공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육신의 안락을 위한 성공이 존재할 수 있고, 정신적 만족을 위한 성공이 존재할 수 있지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적 평화를 얻는 성공을 들 수 있습니다. 육신의 안락이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요구사항(의식주)을 제외하고는 거의 상대적인 것입니다. 10만원짜리 피자를 먹느냐 몇천원짜리 냉동피자를 먹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시골 아이들에게는 이거든 저거든 좋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둘 다 맛있는 음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시골 아이들이 도시에 와서 이것 저것 맛을 보기 시작하다보니 10만원짜리 피자의 질적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될 뿐입니다. 사람은 일단 먹을 거리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상대적인 만족감을 찾는 것입니다.
지적인 만족이라는 것은 이러저러한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 넣게 되면서 누리는 만족감입니다. 여기에는 ‘명예’라는 것도 굉장히 작용을 합니다. 내가 많이 아니까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지요. 유명한 외국 음대를 나와서 바이올린 실력이 출중하면 뛰어난 사람이고 시골 깡촌에서 바이올린을 즐기는 사람은 천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을 미분 적분을 하고 방정식을 구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지요. 그게 없다면 문제가 되지만 장애가 있지 않는 이상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의 소양은 갖추고 살아갑니다.
영적인 성공에 집중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부분을 신경을 쓰고 있을까요? 실제로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만나는 적지 않은 이들은 이 영적 성공에 대해서는 아예 감도 잡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모종의 ‘중독’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중독, 물건을 소비해야 한다는 중독, 술이나 담배에 대한 중독, 성에 대해서도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중독 상태에서 자신이 찾는 그 대상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와야 ‘만족감’을 누리지만 그 만족 상태는 불과 얼마 지속되지 않습니다. 마치 밥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배가 꺼지듯이 이러한 종류의 중독은 그 쾌감이 지속되는 동안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공허감’이 찾아들지요.
영적인 성공은 오직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 ‘신앙 중독’, 또는 ‘종교 중독’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케이스는 아주 심각한 것이 스스로 아주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까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고, 정해진 규정을 일일이 다 완수한다고 마치 온라인 게임의 목표달성을 하듯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정작 자신이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로 스스로를 ‘의인’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참된 영적 성공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그 외아들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지요. 이를 위해서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지적으로 알고 영적 교만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이웃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변의 가장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환상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 중독상태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내면의 충만함이며, 이는 오직 예수님과의 만남, 즉 우리 주변의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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