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는 것과 선택을 받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부르심으로 바로 ‘선택’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남미의 많은 신자들은 인생의 주요 시점에서 받는 ‘성사’들로 모든 것이 완료 되었다고 생각하기 일쑤이지요. 즉 세례성사를 받고, 첫영성체를 통해서 성체성사를 모시고, 견진성사를 받고, 혼배성사를 받으면 영적인 면에서는 모든 것이 ‘완료’ 된다고 생각합니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있을 수 없지요.
우리가 성사를 받는 이유는 그 성사가 지향하는 바에 합당한 은총을 얻어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즉 필요한 은총만 얻고는 그 뒤부터는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서 책상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못과 망치를 받았다고 책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책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필요한 도구를 들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세례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 받지만, 세례가 지향하는 바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지 필요한 은총만 받고 물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즉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가 되어야 비로소 참된 세례자가 되는 것이지요. 나머지 성사들도 모두 똑같습니다.
결국 자신의 영원을 안일하게 생각한 이들이 선택되지 못하는 결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은 ‘안정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이들도 전혀 그렇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들은 훗날 다음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2,14)
우리가 성사를 받는 이유는 그 성사가 지향하는 바에 합당한 은총을 얻어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즉 필요한 은총만 얻고는 그 뒤부터는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서 책상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못과 망치를 받았다고 책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책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필요한 도구를 들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세례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 받지만, 세례가 지향하는 바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지 필요한 은총만 받고 물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즉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가 되어야 비로소 참된 세례자가 되는 것이지요. 나머지 성사들도 모두 똑같습니다.
결국 자신의 영원을 안일하게 생각한 이들이 선택되지 못하는 결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은 ‘안정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이들도 전혀 그렇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들은 훗날 다음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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