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산 인생은 이미 과거의 선조들이 살아갔던 인생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내가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인터넷이 있고 스마트폰이 있지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달라진 건 거의 하나도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됩니다.
어느 아이가 갖고 싶은 새로운 전자 기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나, 수백년 전에 어느 아이가 갖고 싶은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나 단지 그 욕구의 대상이 현대적으로 변했을 뿐 그 내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최신 유행인 화장품을 바르면서 은근히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나, 천년 전에 유럽의 어느 귀부인이 동양에서 구해온 귀한 향료를 뿌리면서 주변 귀족 부인들에게 자랑하는 것이나 그 속내의 허영심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사회 안에서 ‘선을 행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그런 이들은 지금 현대에서도 똑같은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지요.
우리는 껍데기만 바뀐 채로 과거의 선조들이 살았던 욕망을 그대로 살고 있으며 향후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미미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헌데 그런 미미한 우리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지요. 그 모든 영원을 창조하신 분의 특별한 사랑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제멋대로 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기를 배우지 못했으며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선호하고 그것을 따라 가기에 바쁘지요. 아니, 어쩌면 하느님의 뜻은 나의 뜻과 걸맞지 않는 이상 언제나 부차적인 것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부동산을 구입해야 하는데 가난한 이의 굶주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가 승진을 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주말에 좀 심심해 하는게 무슨 대수랍니까? 하느님의 뜻은 내가 새 땅을 사고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을 돕지 않는 이상,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린 이런 일들을 자주 반복해 왔습니다.
어느 아이가 갖고 싶은 새로운 전자 기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나, 수백년 전에 어느 아이가 갖고 싶은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나 단지 그 욕구의 대상이 현대적으로 변했을 뿐 그 내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최신 유행인 화장품을 바르면서 은근히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나, 천년 전에 유럽의 어느 귀부인이 동양에서 구해온 귀한 향료를 뿌리면서 주변 귀족 부인들에게 자랑하는 것이나 그 속내의 허영심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사회 안에서 ‘선을 행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그런 이들은 지금 현대에서도 똑같은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지요.
우리는 껍데기만 바뀐 채로 과거의 선조들이 살았던 욕망을 그대로 살고 있으며 향후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미미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헌데 그런 미미한 우리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지요. 그 모든 영원을 창조하신 분의 특별한 사랑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제멋대로 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기를 배우지 못했으며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선호하고 그것을 따라 가기에 바쁘지요. 아니, 어쩌면 하느님의 뜻은 나의 뜻과 걸맞지 않는 이상 언제나 부차적인 것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부동산을 구입해야 하는데 가난한 이의 굶주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가 승진을 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주말에 좀 심심해 하는게 무슨 대수랍니까? 하느님의 뜻은 내가 새 땅을 사고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을 돕지 않는 이상,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린 이런 일들을 자주 반복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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