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환상’을 품고 자신의 성소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성소에 접어들고 나면 현실을 보게 되지요. 사제, 수도, 혼인... 모든 성소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성소들을 상상하면서 부정적인 내용을 모두 제외시켜 버립니다. 하지만 성소는 상상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입니다.
마치 사춘기의 아이마냥 남녀간의 관계를 떠올리면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고 반응하는 것을 상상하고 그와의 입맞춤을 연상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지요. 사제는 수도자가 되고 싶어하면서 홀로 조용히 하느님만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결혼한 이들을 바라보면서 성가정의 기쁨과 즐거움을 연상합니다. 하지만 수도생활은 그렇게 절대적으로 홀로 고립되어 있는 은수자의 생활인 경우가 거의 없으며, 결혼생활도 그런 소소한 기쁨보다는 소소한 고민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아가 수도자나 평신도는 사제의 삶을 연상하면서 온전히 하느님에게만 헌신하면서 말씀을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사목하는 삶을 떠올리지만 실제 사제의 삶 속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소는 현실이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분별하려면 먼저 그런 ‘상상’들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공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모든 일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나에게 있는 가장 작은 요소라도 크게 키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면 무너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착하지 않고, 인내롭지 않으며, 사랑이 충만하지 않고, 여러가지 덕들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택하는 성소의 삶은 우리의 그런 부족함을 키워주는 훌륭한 학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교를 선택하면서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내가 누리게 될 경력을 함부로 상상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선택할 때에는 그 학교의 특성과 과목, 그리고 나의 현재의 실력을 가늠해서 최고의 학교를 선택합니다. 성소를 고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소의 환상에 빠져서 그 성소를 고를 것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성소가 드러내는 소중한 책무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나를 주인으로 섬기기 위해서 성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려고 성소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결혼 성소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치 사춘기의 아이마냥 남녀간의 관계를 떠올리면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고 반응하는 것을 상상하고 그와의 입맞춤을 연상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지요. 사제는 수도자가 되고 싶어하면서 홀로 조용히 하느님만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결혼한 이들을 바라보면서 성가정의 기쁨과 즐거움을 연상합니다. 하지만 수도생활은 그렇게 절대적으로 홀로 고립되어 있는 은수자의 생활인 경우가 거의 없으며, 결혼생활도 그런 소소한 기쁨보다는 소소한 고민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아가 수도자나 평신도는 사제의 삶을 연상하면서 온전히 하느님에게만 헌신하면서 말씀을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사목하는 삶을 떠올리지만 실제 사제의 삶 속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소는 현실이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분별하려면 먼저 그런 ‘상상’들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공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모든 일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나에게 있는 가장 작은 요소라도 크게 키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면 무너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착하지 않고, 인내롭지 않으며, 사랑이 충만하지 않고, 여러가지 덕들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택하는 성소의 삶은 우리의 그런 부족함을 키워주는 훌륭한 학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교를 선택하면서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내가 누리게 될 경력을 함부로 상상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선택할 때에는 그 학교의 특성과 과목, 그리고 나의 현재의 실력을 가늠해서 최고의 학교를 선택합니다. 성소를 고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소의 환상에 빠져서 그 성소를 고를 것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성소가 드러내는 소중한 책무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나를 주인으로 섬기기 위해서 성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려고 성소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결혼 성소도 예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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