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라는 것은 ‘불쌍히 여김’을 의미합니다. 그를 원래 그대로의 그릇된 모습대로 냉철하게 직시하고 바라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니까요.
그러나 자비는 ‘남용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즉, 하느님이 자비하다고 하느님의 속을 박박 긁어도 괜찮은 것은 절대로 아니지요. 다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실 뿐입니다. 하느님은 각자에게 때가 되면 마땅히 주어질 것을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보류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한 이들에게는 그 보상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해서 미루어두시고, 악한 이들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떨어질 재앙을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헌데 이러한 상황을 두고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무능력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꾸 자신이 하고 싶은 악행을 더해가지요. 그 모든 어둠과 악행이 자신에게 떨어질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도록 무한한 자비를 베풀고 계시지요. 하지만 끝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자비는 그들의 죽음의 순간과 함께 그쳐버릴 것입니다. 한 인간이 죽고 나면 이 세상에서 너끈히 주어지던 자비도 끝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이가 하느님의 자비를 인지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나타나셨고 당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공식적으로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바라셨지요. 그래서 교회는 오늘날까지 부활 다음 주의 이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악한 것을 하느님이 견뎌 참고 계시는데 당신이 당신보다 약한 이들을 억압하고 있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그들의 통곡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자비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전적인 은총의 선물인 것입니다. 악을 그치고 하느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허투루 쓰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비는 ‘남용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즉, 하느님이 자비하다고 하느님의 속을 박박 긁어도 괜찮은 것은 절대로 아니지요. 다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실 뿐입니다. 하느님은 각자에게 때가 되면 마땅히 주어질 것을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보류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한 이들에게는 그 보상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해서 미루어두시고, 악한 이들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떨어질 재앙을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헌데 이러한 상황을 두고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무능력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꾸 자신이 하고 싶은 악행을 더해가지요. 그 모든 어둠과 악행이 자신에게 떨어질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도록 무한한 자비를 베풀고 계시지요. 하지만 끝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자비는 그들의 죽음의 순간과 함께 그쳐버릴 것입니다. 한 인간이 죽고 나면 이 세상에서 너끈히 주어지던 자비도 끝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이가 하느님의 자비를 인지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나타나셨고 당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공식적으로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바라셨지요. 그래서 교회는 오늘날까지 부활 다음 주의 이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악한 것을 하느님이 견뎌 참고 계시는데 당신이 당신보다 약한 이들을 억압하고 있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그들의 통곡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자비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전적인 은총의 선물인 것입니다. 악을 그치고 하느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허투루 쓰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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