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잠과 식사를 빼고 나면 거의 시간이 없지요. 그래서 사람은 모든 것을 하기보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일일까요? 뭔가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 따로 있는 걸까요?
제가 아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절로 다음 질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 먼저 다음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변호사나 의사가 되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배운 게 없어 일용직에서 몸으로 땀을 흘려 일하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고 하겠지요. 맞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가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재주에 따라서 사회 안에서 필요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의사와 변호사가 필요한 만큼 일용직 노동자도 필요한 셈이지요.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일까요?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싫을 뿐이지요.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뭔지 감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이기성이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나’라는 존재가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비로소 완성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어느 꼬마가 바라는 것은 성가신 일 없이 그냥 실컷 노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요. 아이는 그런 부모가 싫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하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훗날 아이가 그 공부를 적절한 곳에 쓰기 시작할 때에 그 아이는 자신이 겪어온 과정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성을 깨부수고 안락함에서 벗어나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서 헌신해야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떼를 쓰는 어린아이마냥 그냥 내가 하던 것만 하면서 살고 싶을 뿐이지요.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24시간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의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차를 한 잔 마셔도, 영화를 보더라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비단 기도만이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니, 달리 말해서 모든 일상이 기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일일까요? 뭔가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 따로 있는 걸까요?
제가 아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절로 다음 질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 먼저 다음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변호사나 의사가 되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배운 게 없어 일용직에서 몸으로 땀을 흘려 일하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고 하겠지요. 맞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가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재주에 따라서 사회 안에서 필요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의사와 변호사가 필요한 만큼 일용직 노동자도 필요한 셈이지요.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일까요?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싫을 뿐이지요.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뭔지 감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이기성이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나’라는 존재가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비로소 완성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어느 꼬마가 바라는 것은 성가신 일 없이 그냥 실컷 노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요. 아이는 그런 부모가 싫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하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훗날 아이가 그 공부를 적절한 곳에 쓰기 시작할 때에 그 아이는 자신이 겪어온 과정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성을 깨부수고 안락함에서 벗어나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서 헌신해야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떼를 쓰는 어린아이마냥 그냥 내가 하던 것만 하면서 살고 싶을 뿐이지요.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24시간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의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차를 한 잔 마셔도, 영화를 보더라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비단 기도만이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니, 달리 말해서 모든 일상이 기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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