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코차밤바의 이발소에서 만난 아저씨는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를 듣자 하니 제가 나중에 늙어서 ‘봉양할 사람’이 없어서라는 것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세속적인 생각 안에서 우리가 자녀를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를 ‘봉양할’ 사람을 미리 마련하기 위한 수단, 즉 일종의 노인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투자를 했으니 그것을 게워 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이 자녀를 맡기시는 이유는 절대로 그러한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를 떠올릴 때에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의 영혼’은 절대로 우리가 마련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부모에게 맡겨진 사랑의 과업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그 영혼이 자라서 성장할 때까지 보살피고 아끼라는 의미이지요.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느님 안에 길러진 신앙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올바른 신앙을 전수받은 자녀들로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보살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전하지 못한 부모로서는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자녀가 어떠한 모양새인지 잘 아니까요. 이미 자신들도 같은 짓거리를 자신의 부모들에게 한 셈입니다. 즉,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관계를 갖게 되지요.
하느님 안에서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입니다. 사실 ‘섬긴다’는 표현 자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요. 돈 때문에, 유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섬기는 척을 할 뿐입니다. 결국은 돈을 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행여라도 부모가 큰 병에 걸려 자녀들이 모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서로 재산 분배로 싸운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자녀를 길러서 부모를 봉양하게 하리라는 생각이었는데 봉양은 커녕 도리어 모일 때마다 서로 싸우면서 골치를 썩이게 되면 그제서야 부모는 뒤늦게 후회를 하곤 합니다. 자신이 드러낸 어두움이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셈이지요.
여전히 세상에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많습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지 않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하는 이들이지요. 이들은 자녀를 사랑하기보다 자신의 명예와 허영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자녀 그 자체보다 자녀의 성적이 중요하고 자녀가 자신에게 가져다 줄 여러가지 영예가 더 소중한 것이지요. 그런 모자란 부모들이 늘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른 자녀의 출세입니다. 자녀가 뭘 원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다만 법대나 의대에는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 여러분, 자녀에게 무언가를 바래서 해주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과 육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부모의 모습입니다. 자녀를 키워서 잡아 먹으려는 부모는 훗날 자신이 잡아먹히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자녀를 맡기시는 이유는 절대로 그러한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를 떠올릴 때에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의 영혼’은 절대로 우리가 마련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부모에게 맡겨진 사랑의 과업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그 영혼이 자라서 성장할 때까지 보살피고 아끼라는 의미이지요.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느님 안에 길러진 신앙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올바른 신앙을 전수받은 자녀들로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보살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전하지 못한 부모로서는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자녀가 어떠한 모양새인지 잘 아니까요. 이미 자신들도 같은 짓거리를 자신의 부모들에게 한 셈입니다. 즉,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관계를 갖게 되지요.
하느님 안에서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입니다. 사실 ‘섬긴다’는 표현 자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요. 돈 때문에, 유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섬기는 척을 할 뿐입니다. 결국은 돈을 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행여라도 부모가 큰 병에 걸려 자녀들이 모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서로 재산 분배로 싸운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자녀를 길러서 부모를 봉양하게 하리라는 생각이었는데 봉양은 커녕 도리어 모일 때마다 서로 싸우면서 골치를 썩이게 되면 그제서야 부모는 뒤늦게 후회를 하곤 합니다. 자신이 드러낸 어두움이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셈이지요.
여전히 세상에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많습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지 않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하는 이들이지요. 이들은 자녀를 사랑하기보다 자신의 명예와 허영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자녀 그 자체보다 자녀의 성적이 중요하고 자녀가 자신에게 가져다 줄 여러가지 영예가 더 소중한 것이지요. 그런 모자란 부모들이 늘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른 자녀의 출세입니다. 자녀가 뭘 원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다만 법대나 의대에는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 여러분, 자녀에게 무언가를 바래서 해주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과 육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부모의 모습입니다. 자녀를 키워서 잡아 먹으려는 부모는 훗날 자신이 잡아먹히게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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