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저를 다양한 환경에 두셨습니다. 그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체험하게 해 주시고 그것을 바탕으로 당신께 나아오는 길을 다져 주셨으며 그와 더불어 당신께 나아가려는 모든 이들을 이끌 여지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만일 저에게 그런 일련의 체험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른 채로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들은 때에 맞추어 일어났고 저에게 '체험'이라는 형태로 쌓이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저에게는 수많은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이유로 구미라는 동네에서 대구로 나와야 했던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불안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런 변화 가운데 인간은 어떻게 새로이 적응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적응하는 과정에 가장 절실한 요소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어야만 했고 결국 '신앙'만이 최종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국가를 바꿔 가면서까지 저를 '이동'시키셨고 그 가운데 최종적으로 하느님 당신 말고는 그 어디에도 나를 내어 맡기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나를 온전히 차지하실 수 있고 나에게 절대적인 안정을 선사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요.
저는 부유하게도 가난하게도 살아볼 수 있었습니다. 임대 주택에서부터 시작해서 수십평의 넓은 아파트로, 그리고 신학교의 기숙사에서 재건축이 이루어지기 전의 좁은 보좌 신부의 방으로, 또 볼리비아라는 극적인 환경에서 다시 한국이라는 익숙하고 풍요로운 환경으로 다양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물질'이라는 것이 굉장히 상대적이고 많이 가진다고 유익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많이 가져서 도리어 생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참으로 다채로웠고 그 모두에게서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좋은 교훈이 담긴 책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지만 반대로 탐욕스럽고 악한 내용이 담긴 책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으로도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참으로 다양하게 두셨습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서 이해받지 못하고 배반당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고 또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이에게서 따스한 보살핌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급성간염으로 볼리비아에서 쓰러졌을 때에 나를 돌봐준 것은 내가 평소에 그렇게 애정을 쏟아오던 형제들이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현지의 자매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병상을 밤낮으로 지켰고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면 늘 화려한 자리를 함께 하던 이들은 얼굴이나 비추면 다행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그렇게 쓰러진 것이 하느님에게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다채로운 체험들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저를 당신에게로 이끄셨습니다. 제 안에 작게 심겨진 하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점점 자라나게 되었고 영원 안에서 찬란히 꽃을 피우도록 이 지상의 삶을 하루하루 선물하신 것이었습니다. 언제 데리고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삶인데 하루 또 하루 기회를 주시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신 것이지요.
제게 남은 일은 영혼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라면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나누어 얻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삶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들에 또 다채로운 시련과 체험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하루 하루 묵묵히 살아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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