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승용차를 산 사람이 친구들에게 자랑을 시작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삽니다. 그리고 그 부러움 가운데에는 '시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그 자랑하는 친구가 쫄딱 망해 버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악한 마음도 포함된 셈이지요. 그래서 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자랑으로 주변 사람들의 악한 의도를 끌어당기는 셈입니다. 우리가 드러내는 것을 바탕으로 주변에서 다가오는 대상이 달라지게 됩니다. 세속적인 요소를 드러내면 세속적인 마음들이 다가옵니다. 반면 거룩한 것, 영적인 것을 드러내면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지루한 미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그만한 은총의 수로가 따로 없지요. 남미에서 선교를 하면서 사제의 존재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방치된 공동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미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비록 자기네 말을 어눌하게 하는 사제라도 큰 도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 양식을 누리는 법을 제대로 배우면 우리는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만' 찾아간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위해서 다가갔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예수님을 목말라했지요. 그들의 힘든 삶에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이라도 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미 잘 사는 이, 이미 누릴 게 많은 사람은 그러한 위로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쓰기에도 바쁘기 때문이지요.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루카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