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도 눈치라는 것이 있어서 완전 백프로 무결한 사람에게 좀처럼 대들지 않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에게 일어났지요.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소소한 오류를 지니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흠도 티도 없이 소송에까지 휘말리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뭔가 일이 있었는데 나의 탓이 그리 크지 않은데 상대가 우길 수는 있겠지요.
악인들도 자신들이 크게 성가시지 않은 이상은 크게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악한 의도와 더불어서 ‘게으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가신 일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이 어떤 일에 자신의 악을 본격적으로 저지르는 것은 상대의 어느 부분에 자신의 악이 부딪혀서 충돌을 빚어내게 될 때 시작이 됩니다.
그 누구도 ‘공기’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기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움직임을 그 자체로 감싸 안아 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정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어서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일종의 ‘영적인 공기’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즉, 상대의 모든 영적 활동을 기꺼이 감싸주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정한 신앙인은 거의 충돌 없이 지냅니다. 충돌 그 자체가 신앙의 미성숙성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리고 충돌을 일으킨 사람은 곧잘 ‘정의’를 들고 나서기 시작합니다. 즉, 참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싸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왜 빌라도 앞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모든 부당한 고발에 대해서 조목조목 정의를 들며 따지지 않고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뭘 몰라서 그래, 내가 더 똑똑해. 그래서 나는 참된 정의를 위해서 이 싸움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루어내고 말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두십시오. 그가 시작하는 싸움을 그가 스스로 마치게 두십시오. 사람들 사이의 모든 싸움은 피폐함을 남깁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들입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에페 6,12)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물리치십시오.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잘 가르치며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또 악마에게 붙잡혀 그의 뜻을 따르던 그들이 정신을 차려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2티모 2,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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