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지사항을 하고 나면 언제나 짤막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어제 미사 공지사항 시간에는 이런 말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사랑으로 하느님을 찾기가 힘이 든다면, 두려워서라도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는 하느님이 두려워서 어둠의 행실을 피할 것이고 최소한 영원한 절망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헌데 제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회사 사장을 두려워하기는 해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십니다. 헌데 인간은 몇 푼 벌겠노라고 다른 이들을 속여댑니다. 특히나 ‘치노’(아시아권 사람, 눈이 작은 사람의 통칭으로 사용되는 말, 원 뜻은 중국 사람)가 다가오면 더 좋습니다. 제가 왜 이걸 아느냐면 실제로 저를 대상으로 그렇게 속이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렇게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과연 어떠할까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둠의 행실을 하느님은 투명한 유리잔을 바라보듯이 아주 속속들이 알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십시오..” 사실 두려움은 성령의 은사이기도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경외’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마저도 지니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특히나 미사 중에 껌을 질겅질겅 씹는 걸 보면 저는 한번은 다정하게 ‘미사 중에 껌 씹는 거 아닙니다.’라고 전체를 대상으로 말하지만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아예 대놓고 그 사람을 직시하면서 말합니다. ‘제가 이미 말했는데도 씹고 계시네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멈추는 것이 보통입니다. 헌데 그러는 중에 심지어는 그 즉시 자신은 절대로 씹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지요. 경외심은 커녕 최소한의 예의도 없고 심지어는 양심도 없는 경우입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