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사도1,7)
우리가 알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어떤 것은 우리에게 절대로 알려질 지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 세상의 종말과 같은 것은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헌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 위해서, 또 그것을 알려준다는 이들에게 혹해서 유혹에 넘어갑니다.
수많은 이교들이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정보, 즉 마지막 순간의 정보에 대한 유혹으로 사람들을 속여 넘겼습니다.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어떤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한지 등등이었지요. 그만큼 속아넘어간 이들도 어리석었고 무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무지는 영원히 변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선부터는 그들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가는 길이 이미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이들을 끌어들이는 데에 혈안이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결국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셈이지요. 그들은 하느님의 진실과 정의와 선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간 셈입니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교에 넘어가는 이들은 안타깝지만 결국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자기 탓 없이 죄에 빠져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이가 있다면 그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만 해도 세상에는 엄청난 것들이 존재합니다. 헌데 알 필요가 없는 것까지 알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헌데 지적 욕구가 극에 달해서 전혀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경우를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이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정상이라고 착각하곤 하지요.
우리가 알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어떤 것은 우리에게 절대로 알려질 지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 세상의 종말과 같은 것은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헌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 위해서, 또 그것을 알려준다는 이들에게 혹해서 유혹에 넘어갑니다.
수많은 이교들이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정보, 즉 마지막 순간의 정보에 대한 유혹으로 사람들을 속여 넘겼습니다.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어떤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한지 등등이었지요. 그만큼 속아넘어간 이들도 어리석었고 무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무지는 영원히 변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선부터는 그들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가는 길이 이미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이들을 끌어들이는 데에 혈안이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결국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셈이지요. 그들은 하느님의 진실과 정의와 선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간 셈입니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교에 넘어가는 이들은 안타깝지만 결국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자기 탓 없이 죄에 빠져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이가 있다면 그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만 해도 세상에는 엄청난 것들이 존재합니다. 헌데 알 필요가 없는 것까지 알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헌데 지적 욕구가 극에 달해서 전혀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경우를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이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정상이라고 착각하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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