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꿈같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자신이 행하는 짓을 모르고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것이지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알지만 사랑하기 싫은 것이지요. 증오하면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증오가 사랑보다 쉬운 셈이지요.
아마 우리가 추상적으로 알고 있는 현실은 실제의 현실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착하지 않고 저마다의 잇속을 차리는 데에 명민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명백하게 알면서도 하느님이 원하는 것을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그러기에 세속의 자녀라 불리는 자들이지요. 우리 주변의 유명한 인재는 한 사람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었고 모든 이의 준비된 여정이었습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그대로도 좋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소가 왜 떠나가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고친 외양간에서도 소를 잃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강도가 들어와서 소를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잡아 먹었다면 다행일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소가 자기 발로 떠난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헛군데에 정신을 많이 쓰는 이들입니다. 양식도 되지 않는 것에 마음을 쓰고 그렇게 화려하게 겉꾸민 것으로 으스대고 있지요. 머지않아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들을 바탕으로 말입니다. 제대에 꽃꽂이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덕으로 가꾸어야 했으며 감실의 위치 설정도 중요하지만 감실 안에 누가 계신지를 알아보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외적인 것으로 시간을 많이 낭비합니다.
양반집 자제가 격식을 갖추고 문안인사를 드리고 밥을 먹으려는 동안 상놈집 자식들은 이미 밥을 먹고 일을 시작합니다. 고상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고상한 것이 본질을 해칠 정도가 되면 허례허식이 되는 것이지요.
핵심으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악이 뭔지 알고 저지릅니다. 그 부분을 ‘어쩔 수 없다’고 포장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쩔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낸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어찌해야 하는 이들이지요.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살려거든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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