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17,12)
이 운명론적인 표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치 탄생의 순간부터 멸망할 종족이 있고 그렇지 않은 종족이 있어서 예수님이 마치 으스대기라도 하듯이 자신이 제자들을 지켜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죄로 인해서 모두 멸망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유다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보다 더 큰 은총을 받았지만 그 모든 은총을 무시한 셈이지요.
이런 추상적인 설명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길가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습니다. 헌데 어느 집의 형은 그 아이스크림 가게의 실체를 알고 있었지요. 그 아이스크림은 화학약품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형은 특별히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저 아이스크림 가게에 대한 진실을 열심히 가르쳤고 어린 동생들은 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형을 신뢰하고 그 아이스크림을 사먹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생들 가운데 한 녀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셈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행적으로 늘 가르치고 또 가르치면서 세상에서 마음을 떼고 천상의 것을 추구하기를 가르쳤지요. 하지만 그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들은 이들이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버린 셈입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멸망해 버린 셈이지요.
운명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멸망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그 운명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의 선택은 아직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그토록 받고도 예수님을 저버린 유다의 결정으로 인해서 그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모든 말씀을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셔서 당신의 제자들이 지금은 비록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 일의 추세를 보고는 깨닫게 하신 것이지요.
자, 그럼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영원한 상급을 받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영원히 멸망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 가운데에는 ‘새로운 유다’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정말 우리는 우리가 아는 바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지금의 유다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스승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기는 자들입니다. 아주 비열한 족속들이지요.
이 운명론적인 표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치 탄생의 순간부터 멸망할 종족이 있고 그렇지 않은 종족이 있어서 예수님이 마치 으스대기라도 하듯이 자신이 제자들을 지켜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죄로 인해서 모두 멸망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유다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보다 더 큰 은총을 받았지만 그 모든 은총을 무시한 셈이지요.
이런 추상적인 설명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길가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습니다. 헌데 어느 집의 형은 그 아이스크림 가게의 실체를 알고 있었지요. 그 아이스크림은 화학약품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형은 특별히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저 아이스크림 가게에 대한 진실을 열심히 가르쳤고 어린 동생들은 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형을 신뢰하고 그 아이스크림을 사먹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생들 가운데 한 녀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셈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행적으로 늘 가르치고 또 가르치면서 세상에서 마음을 떼고 천상의 것을 추구하기를 가르쳤지요. 하지만 그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들은 이들이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버린 셈입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멸망해 버린 셈이지요.
운명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멸망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그 운명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의 선택은 아직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그토록 받고도 예수님을 저버린 유다의 결정으로 인해서 그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모든 말씀을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셔서 당신의 제자들이 지금은 비록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 일의 추세를 보고는 깨닫게 하신 것이지요.
자, 그럼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영원한 상급을 받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영원히 멸망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 가운데에는 ‘새로운 유다’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정말 우리는 우리가 아는 바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지금의 유다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스승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기는 자들입니다. 아주 비열한 족속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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