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마치 ‘당신은 먹지 않고 얼마나 견딜 수 있습니까?’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신앙은 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은 가졌다 버렸다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교회에는 ‘쉬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과연 쉬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쉬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한 번 맛본 영혼은 결코 하느님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종류의 쉬는 교우가 나뉘어집니다. 교회의 무언가에 실망한 이들과 애시당초부터 신앙이 없었던 자들이지요.
첫 경우는 참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찾는데 하느님을 전해야 할 교회가 그들의 신앙을 도리어 해치는 체험을 한 상처받은 영혼들이지요.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라도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참된 진리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참된 진리는 진정한 창조주이신 ‘하느님’ 외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그냥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들은 마치 슈퍼마켓에서 상품을 고르듯이 자신에게 흥미있는 상품을 골랐다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으니 그냥 내려놓았을 뿐입니다. 애초부터 그들은 자신의 손에 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이들이고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을 찾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들은 신앙의 부수적인 것들에 매력을 느꼈고 그것을 누렸고 이제 지겨워진 셈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살이에 헌신하는 것이지요.
물론 모두 새로이 초대받아야 할 이들입니다. 하느님은 모두를 구원하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다. 초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지만 응답하는 이는 적습니다.
때로 가톨릭 계열 언론에 퍼센테이지가 나오면서 신자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런 기사를 읽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숫자는 숫자일 뿐입니다. 신앙은 퍼센트나 양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 운동장에 수백만명을 몰아 넣더라도 그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행위보다 한 의로운 영혼이 진심을 다해 행하는 선행이 더욱 가치로운 법입니다.
신앙은 쉼이 없습니다. 아예 가지지 못했거나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길을 제대로 모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그들은 과연 쉬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쉬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한 번 맛본 영혼은 결코 하느님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종류의 쉬는 교우가 나뉘어집니다. 교회의 무언가에 실망한 이들과 애시당초부터 신앙이 없었던 자들이지요.
첫 경우는 참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찾는데 하느님을 전해야 할 교회가 그들의 신앙을 도리어 해치는 체험을 한 상처받은 영혼들이지요.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라도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참된 진리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참된 진리는 진정한 창조주이신 ‘하느님’ 외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그냥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들은 마치 슈퍼마켓에서 상품을 고르듯이 자신에게 흥미있는 상품을 골랐다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으니 그냥 내려놓았을 뿐입니다. 애초부터 그들은 자신의 손에 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이들이고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을 찾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들은 신앙의 부수적인 것들에 매력을 느꼈고 그것을 누렸고 이제 지겨워진 셈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살이에 헌신하는 것이지요.
물론 모두 새로이 초대받아야 할 이들입니다. 하느님은 모두를 구원하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다. 초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지만 응답하는 이는 적습니다.
때로 가톨릭 계열 언론에 퍼센테이지가 나오면서 신자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런 기사를 읽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숫자는 숫자일 뿐입니다. 신앙은 퍼센트나 양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 운동장에 수백만명을 몰아 넣더라도 그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행위보다 한 의로운 영혼이 진심을 다해 행하는 선행이 더욱 가치로운 법입니다.
신앙은 쉼이 없습니다. 아예 가지지 못했거나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길을 제대로 모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댓글